[오늘과 내일/박영균]새 경제팀, 현장 경제지표를 보라

  • 입력 2009년 1월 23일 19시 54분


요즘 서울시청 뒤편에는 택시 수십 대가 길게 늘어서 있다. 오후 7시 무렵이면 택시들이 줄지어 손님을 기다린다. 이렇게 긴 행렬은 처음 본다. 작년 겨울부터 늘어나던 택시가 이젠 시청 앞 광장이 보이는 곳까지 이어져 있다.

이곳만이 아닐 것이다. 서울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 이러니 변두리나 지방은 과연 어떨까. 경기를 잘 안다는 증권회사 직원이 아니더라도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누구나 시중 경기가 어떤지 안다. 단골 식당이나 인근 상점이 예전보다 한산하고 빈 가게와 사무실이 늘어나는 모습을 보면 경기상황을 직감한다. 한참 늦게 나오는 정부 경제통계보다 훨씬 먼저 몸으로 느낀다.

매주 실시간 통계를 냈던 그린스펀

작년 4분기 국내총생산이 전 분기보다 5.6%나 줄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분기의 ―7.8% 이후 최저치다. 강만수 전 장관이나 이성태 한은 총재도 “작년 4분기에는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된다”는 식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언급했다. 하지만 충격을 줄이기 위한 발언인 듯하다. 미리 알고 있었다면 공식 통계가 나오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책을 내놓을 수는 없었을까.

정부가 이제 와서 내수부양에 속도를 낸다고 뒤늦게 호들갑을 떠는 건 시쳇말로 버스가 떠난 뒤 손 흔드는 격이다. 기업이나 시민들은 이미 체험한 현장 경기를 뒤늦게 확인하고 정책을 펴는 꼴이다. 경제성장률이 대폭 급락하는 동안 정부는 통계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는지 묻고 싶다. 정부 통계도 정책도 뒷북을 치면서 신뢰를 얻을 수는 없다. 미네르바가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뒷북 정책 때문이 아닌가.

18년 동안 미국의 ‘경제대통령’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은 경기 상황을 즉각 파악하기 위해 국내총생산(GDP) 통계를 매주 만들었던 적이 있다고 자서전에서 밝혔다. 그린스펀이 1970년대 포드 행정부 시절 백악관 경제자문회의 의장이었을 때 미국은 2차 세계대전 후 가장 심한 불황을 겪었다. 오일 쇼크까지 겹쳐 의회와 언론에선 경기 부양책을 쓰라고 난리였다. 그는 경기부양책을 어느 정도로 써야 할지 포드 대통령에게 보고해야 했다. 그러나 분기별 경제 통계는 너무 늦어 소용이 없었다. 그는 주위의 협조를 얻어 밤늦게까지 매주 GDP통계를 만들었다. 정책 시행이 제때에 이루어지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20일 취임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경제보고를 일일 일정에 넣으라고 했다. 금융시장 대책이나 재투자계획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최신 정보를 매일매일 보고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급변하는 경제상황을 보면 요즘 하루 또는 한 달은 평시의 한 달이나 1년과 진배없다. 매일 챙기지 않으면 정책 당국자들은 거짓말쟁이가 되고 점쟁이만도 못하다는 비판을 각오해야 한다. 경제상황도 면밀하게 파악하지 못하면서 워룸에서 비상대책회의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현장을 모르고 가보지도 않은 거물급 인사들이 한건주의 대책이나 보고 받고 코멘트하는 식으로는 해법이 나오지 않는다.

설 연휴에 현장의 소리 들어야

윤증현 경제팀은 무너진 경제팀에 대한 불신의 벽을 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린스펀이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를 여럿 데려온대도 백약이 무효일 뿐이다. ‘1·19 개각’으로 기획재정부 장관에서 물러난 강 전 장관은 3일 만에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에 내정됐다. 이른바 ‘MB노믹스’의 핵심 정책을 뚝심 있게 밀어붙여 대통령의 신뢰를 얻은 결과다. 그러나 정책이 성공하려면 대통령의 신뢰도 중요하지만 국민과 시장으로부터의 신뢰가 더 중요하다.

새 경제팀은 대통령의 도움이 필요하다. 경제팀이 국민과 소통하면서 믿음을 쌓아가야 한다. 대통령이 직접 나섬으로써 경제팀의 설자리를 빼앗는 일은 삼가야 한다. 실패를 거듭하던 방사성폐기물처분장 건립사업을 해결한 이희범 전 장관은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친 경험이 많다. 지역주민과 환경운동가들을 여러 번 만나 의견을 듣고 설득했다고 한다. 소통이 안 된다고 불만을 늘어놓을 게 아니라 먼저 시장의 얘기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 새 경제팀은 설 연휴에라도 경제 현장에서 직접 부대껴 보기 바란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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