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투데이]1998년 살아났던 한국증시를 기억하자

  • 입력 2009년 1월 22일 02시 55분


대학 다닐 때 ‘꺼벙이’라는 별명이 붙은 친구가 있었다. 서울토박이에다 일류고 출신으로 별로 나무랄 데가 없는 엘리트였지만 속이 없고 어수룩해서 바보스러웠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었다. 친구들이 자주 점심값이나 커피값을 바가지 씌워도 싱긋이 웃으며 군말 없이 지불해주곤 했다.

꺼벙이는 졸업 후 어머니가 경영하던 조그만 전자부품업체(대기업 하청업체)를 물려받아 운영했다. 10년 전 외환위기 당시 몇 년 만에 생각나서 산에나 같이 가자고 연락을 하니 좋아라 하고 달려 나왔다. 그때는 탄탄하던 대기업들도 도산이 속출하던 때라 그가 경영하던 중소기업이 걱정되어 안부를 물었더니 의외로 자기 회사는 걱정이 없다고 했다.

일찌감치 사업 구조조정을 조금씩 해서 본업이던 전자부품 제조업은 부업에 불과하고 사무실 임대료 수입으로 오히려 매년 안정적인 현금이 유입된다고 했다. 그 돈으로 주식을 계속 사 모으고 있단다.

어떤 주식을 사느냐고 물었더니 “내가 주식을 어떻게 알아. 그냥 절대로 안 망할 만한 회사이면서 배당금 많이 주는 회사를 사는 거지 뭐. 요즘 주가가 반값으로 떨어져 같은 돈으로 작년의 두 배나 살 수 있어”라면서 낄낄댔다. 이 친구는 주식을 ‘가격’으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수량’으로만 계산하고 있었다.

여전히 꺼벙이는 꺼벙이구나. 참으로 한심한 친구, 자기가 보유한 주식의 가격이 반 토막 난 것은 계산하지 못하고 새로 매입할 수 있는 주식 수가 늘어난 것을 좋아하고 있었다.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는 필자에게 이 친구가 놀라운 말을 했다.

“야, 주가야 매일 올랐다 내렸다 하지만 주식 수는 변함이 없잖아.”

그랬다. 꺼벙이야말로 진정한 가치투자자였다. 요즘 내 친구 꺼벙이는 동창 중에서 최고의 부자가 되어 있다. 외환위기 이후 보유 주식수가 크게 늘었을 뿐 아니라 주가도 엄청나게 올랐다. 이제는 배당금 수입이 그가 운영하는 회사의 주수입원이 되었다. 지금쯤 내 친구 꺼벙이는 또다시 같은 금액으로 매입할 수 있는 주식수가 늘어난 것을 기뻐하고 있을 것이다.

‘꺼벙한 놈이 당수가 8단’이라는 말이 있다. 어수룩해 보이는 사람이 오히려 속은 더 영리하다는 의미다. 그러고 보니 투자의 천재인 워런 버핏도 왠지 꺼벙해 보인다.

주식시장을 예측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는 과거 경험이 주는 시사점이다.

한국 경제는 1999년 상반기에 최악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1999년 하반기부터 경기가 회복되었다. 그런데 주가는 그보다 앞선 1998년 6월에 최저점을 기록한 후 3분기에 바닥을 형성했고 4분기부터 본격적으로 상승했다.

세계 경제는 올해에 최악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내년부터는 회복될 것으로 예상된다. 1998년의 한국 증시를 기억하라.

박춘호 이토마토 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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