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인권]출총제, 국제경쟁의 족쇄 투자 활성화 위해

  • 입력 2009년 1월 21일 02시 56분


출자총액제한제도는 1980년대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계열사를 과다하게 늘리는 것을 억제한다는 명분으로 도입되었다. 자산이 일정규모 이상인 기업집단에 속한 계열사의 출자한도를 순자산의 일정비율 이내로 제한해서 다른 기업을 설립하거나 인수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기업규모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기업에 출자하지 못하도록 하는 이러한 투자규제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있는 규제다. 다른 나라에도 우리와 유사한 기업집단이 많지만 기업의 투자행위에 대해 이같이 직접적으로 출자금액을 규제하는 나라는 없다. 이는 우리나라 모든 대기업의 타기업 출자는 총수의 영향력 확장을 위한 나쁜 투자라는 것을 전제로 만든 불량규제다.

최근 정부는 이런 인식에 따라 기업활동에 대한 사전규제보다는 사후관리로 규제방식을 바꾸고, 기업환경을 개선해서 투자의욕을 높이기 위해 출총제의 삭제를 포함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진작 했어야 하지만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2008년 정기국회에서 여야 간 정쟁에 휘말려 처리되지 못했다.

출총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 내용과 목적이 변질돼 왔다. 김영삼 정부 때는 기업집단의 업종 전문화를 위해 이 규제가 필요하다고 하더니, 김대중 정부에서는 구조조정에 이 규제가 장애가 된다면서 폐지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대기업의 내부 지분이 상승하자 이 규제가 필요하다면서 다시 도입하더니, 노무현 정부에서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필요하다면서 계속 유지했다. 하나의 규제가 업종 전문화, 소유 분산, 지배구조 개선 같은 다른 목적을 위해 계속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마치 하나의 약을 복통, 감기, 피부병에 처방하는 것 같은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결국 출총제는 그 규제의 유효성이나 필요성과는 무관하게 친기업 반기업을 가르는 상징물처럼 되었고, 역대 정권은 기업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위한 지렛대로 이 규제를 계속 유지하고자 했을 뿐이다. 규제 내용보다는 상징성과 명분 때문에 규제가 지속된 셈이다.

자산기준으로 ‘세계 500대 기업’에 속하는 기업 수가 중국은 1997년 3개, 2002년 11개, 2008년 29개로 증가했으나, 한국은 1997년 13개에서 2002년 12개, 2008년 15개로 큰 변화가 없다. 게다가 500대 기업에 속한 한국 기업의 평균 자산규모는 2008년 기준으로 중국 기업의 50% 수준에 그친다. 간단한 통계분석을 해보면 한 국가의 총생산 및 1인당 국민소득이 그 나라 기업의 자산규모와 매우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글로벌 기준으로 보면 별로 크다고 할 수도 없는 우리나라 대기업들을 국내 기준으로 규모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규제를 가하는 것은 글로벌 경쟁시대에 우리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우는 일이다. 특히 요즘같이 경제가 어렵고, 신속한 구조조정과 활발한 기업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는 때에는 출총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출총제는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불분명하지만, 그 국민경제적 비용은 앞으로도 계속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규제다. 출총제는 즉시 폐지해야 한다.

이인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조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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