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성희]다윈의 해, 링컨의 해

  • 입력 2009년 1월 16일 20시 04분


암울한 경기위기 속에서도 미국은 버락 오바마 당선인의 취임식을 앞두고 설레고 있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와 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탄생. 후대 사가(史家)들은 2009년을 평가할 때 어느 쪽을 더 큰 사건으로 기록할지 궁금해진다. 시곗바늘을 200년 전으로 돌려 두 명의 위인(偉人)을 만날 때도 똑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각각 과학자와 정치가로 세계를 변화시켰다는 공통점이 있는 찰스 다윈과 에이브러햄 링컨 중 누가 더 위대할까? 이 둘이 1809년 2월 12일 같은 날에 태어났다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에 불과한 것일까?

사회도 다양해야 진화한다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니 얼마나 어리석은가!” ‘종의 기원’을 읽은 후 동물학자 T H 헉슬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떤 종은 번성하고 어떤 종은 사라지는 이유는 자연선택이며 자연선택을 통해 생물은 진화한다는 발상은 어찌 보면 단순하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종교 아닌 다른 이유로 진화론을 이해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제대로 알긴 아는 걸까? 과천에서 열리는 다윈특별전을 찾았을 때 진화론에 대한 가장 큰 오해가 진화를 진보(advancement)로 해석하는 것이란 대목이 있었다. 진보는 일정한 목적과 방향성, 발전을 포함한 개념이다. 하지만 리처드 도킨스 옥스퍼드대 교수는 “자연선택은 맹목적 무의식적이며 미리 계획한 의도 따위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학자들에 의하면 진화란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이다. 갑자기 기온이 낮아지거나 먹이가 부족해지는 환경변화에 직면했을 때 살아남으려면 일단 종(種)이 다양해야 한다. 그래서 어떤 것은 살아남고 어떤 것은 도태된다. 단일종만 있으면 작은 변화에도 취약하기 때문에 멸종하기 쉽다. 인간사회가 움직이는 원리도 마찬가지다. 어떤 시대, 어떤 나라에서나 적용되는 무오류의 사상이나 정치체제는 없다. 여러 사상과 체제가 경쟁하면서 시대의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하는 모델이 살아남는다.

금융위기 이전만 해도 미국식 신자유주의 모델이 각광을 받았다. 신자유주의도 비대해진 정부의 비효율과 관료주의, 복지병을 해결하고자 나온 것이지만 고삐(규제)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던 파생금융상품이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다. 다윈식으로 말하면 환경변화가 발생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도태할 수도 있지만 이 위기를 잘 넘어선 사람들은 더 나은 세상을 살 것이다.

링컨은 오바마처럼 일리노이 주를 정치적 근거지로 하고 있고 흑백 통합 이미지를 갖고 있다. 미국에선 링컨의 영향력은 다윈을 능가한다. 예수 다음으로 많은 전기가 쓰였다고 할 정도다. 우리가 아는 링컨은 흑인노예를 해방하고 미국을 남북 분열의 위기에서 구해냈으며 임기 중 살해된 영웅이지만 실제 모습은 꼭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한다.

지금 필요한 링컨의 통합정신

공화당 출신이었지만 링컨은 강력한 보호무역주의자였다. 그는 철도회사의 이익을 대변했고 전쟁 중엔 비상대권을 갖고 반역자를 영장 없이 투옥했다. 노예해방을 선언한 것도 북군의 패색이 짙어지자 전쟁의 대의명분을 선점하기 위한 임시조치였다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링컨 비판가가 주장하듯 링컨이 그렇게 행동했다고 해서 그의 위대성이 축소되는 것은 아니다. 완전무결한 인간이란 없으며, 정치가에게 선택은 불가피한 과정이다. 그 결과가 나라에 보탬이 되고 역사발전에 기여했는가가 중요하다. 그는 정적을 포용했고, 전쟁에서 이겼지만 남부를 짓밟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링컨이야말로 통합의 지도자다.

최악의 경기침체 속에서 모두가 힘을 모아도 시원찮을 판에 정치권이 보여주는 분열상은 새해 벽두부터 희망보다 절망을 말하게 한다. 이런 불확실성과 혼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정신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다른 존재를 인정하는 다양성과 통합의 정신이야말로 탄생 200주기를 맞이한 두 위인에게 오늘날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배워야 할 덕목이 아닐까.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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