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서승직]세계 100대 대학, ‘겉치레 개혁’으론 안된다

  • 입력 2009년 1월 13일 02시 55분


무분별한 대학 설립과 세계 최고의 대학진학률은 대학만을 지향하는 우리 교육정서에서 비롯된 결과다. 세계 최고의 교육열에도 불구하고 교육 경쟁력은 형편없다. 2008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평가에 따르면 한국 대학교육의 경제·사회 요구 부합도는 평가 대상국 55개국 중 53위이다. 교육 분야 경쟁력은 35위로 1년 전보다 6계단이나 뒷걸음질했다. 홍수 때 먹을 물이 없듯이 사람은 넘쳐나도 쓸 만한 인재가 없다는 기업의 목소리는 이유 있는 염려다.

정부가 마침내 부실 사립대의 구조조정에 나선다고 하지만 더 시급한 점은 방만하고도 비효율적인 국공립 대학의 구조조정이다. 지금까지 대학의 구조조정은 이해관계에 따라 간판만 바꿔 다는 식이었다. 조건 없는 개혁만이 글로벌 대학이 되는 강점을 찾는 첩경이다.

대학의 개혁은 국가를 든든하게 하는 경쟁력을 키우는 일로 무엇보다 목표와 준비된 계획 그리고 강력한 실천이 있어야 한다. 세계 최고의 대학은 최고 수준의 교수와 교육과정의 바탕 위에 개방성과 진취성 그리고 차별화된 독창성이 결합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들 대학의 경쟁력은 개혁의 강점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우리 대학육성 정책은 이런저런 이유로 지역과 학교 안배 등 나눠주기로 귀착된다. 이런 정책으로는 외국 대학에 인재를 보내는 피더스쿨(feeder school) 역할이나 할 뿐 뛰어난 전문가 육성은 절대 불가능하다. 국내 대학은 몇 년 안에 세계 100대 대학이 되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내놓고 있다. 분별없는 흉내 내기로는 목표를 이룰 수 없다. 남을 치유한 처방으로 나의 고질병을 고칠 수 없다. 국내 대학이 세계 100대 대학의 반열에 들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본질을 바꿀 준비된 계획과 실천 의지가 전혀 없어서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는다. 나무가 본질이면 열매는 현상에 불과하다. 입시철만 되면 현상을 본질의 강점처럼 수험생을 현혹하는 도토리 키 재기 식의 홍보가 치열하다. 현상의 포장술은 한마디로 변질에 불과하다. 변질을 내세워 우수학생 유치에 열을 올리는 일도 문제지만 인재를 육성할 수 있는 본질의 외면은 더 큰 염려다. 열매로 나무의 품종을 개량하려는 대학의 모습은 국력 손실의 표본이다.

교육개혁 최우수 대학이 정원을 걱정하는가 하면 자율화라는 이름으로 필수과목을 축소해 전자공학을 전공하고도 전자제품 기판 회로도를 못 읽는 학생이 적지 않다. 훈련을 선택해서 받게 하고 용감한 병사를 육성하려는 모순된 시스템 때문이다. 대학의 내면을 살펴보면 실상은 더욱 심각하다. 140학점 체제를 125학점으로까지 하향 조정하는가 하면 한 학기 교육과정도 16주에서 15주로 운영하는 대학이 점점 늘어난다. 교육비 절감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교육의 질과 경쟁력 저하는 불을 보듯 뻔하다.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이어온 대학의 개혁은 참 어려운 일이다. 시대에 맞지 않는 교육정서의 깊은 꿈에서 하루 빨리 깨어나야 한다. 대학 발전을 저해하는 고질적인 학연과 지연도 속히 청산돼야 한다. 국내 토종 학자가 세계 명문대 교수로 초빙되는 현실에서 객관적으로도 우수한 인력을 국내 학자라는 이유만으로 스스로가 부정하는 모습은 심히 잘못됐다. 명실상부한 대학 개혁으로 21세기를 주도할 명품 인재를 육성하는 세계 100대 대학이 몇 년 안에 탄생하길 바란다.

서승직 인하대 교수 대한설비공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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