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석호]“강성대국 문패달자” 北의 신년 말장난

  • 입력 2009년 1월 3일 02시 56분


북한이 1일 노동신문 등 3개 신문에 발표한 신년 공동사설에는 ‘강성대국’ 건설에 대한 낯선 표현 하나가 등장했다.

“어버이 수령님의 최대 애국 유산인 우리 사회주의 조국에 기어이 강성대국의 ‘문패’를 달아야 한다.”

이른바 ‘문패론’이다.

노동신문은 지난해 12월 29일에도 ‘그이는 오늘도 행군길에 계신다’는 장문의 시를 싣고 ‘문패’라는 표현을 썼다.

‘수령님의 고귀한 유산인/사회주의 우리 조국에/강성대국의 문패를 기어이 달아야 한다시며/강행군의 신들메를 조이시고/가고가신 그 길 그 자욱자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강성대국을 건설하기 위해 지난해 100차례 가까이 현지지도를 했다고 찬양하는 송시(頌詩)다.

그런데 왜 하필 ‘문패’일까. 북한은 지난해 공동사설에서 김일성 출생 100년, 김정일 출생 70년이 되는 2012년에 “강성대국의 대문을 활짝 열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대문을 열 때까지 3년이 남은 올해 문패라도 달아야 하니 ‘주민들이여, 배가 고프더라도 불평하지 말고 더 땀 흘려 김 위원장에게 충성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북한은 1998년 강성대국 구호를 처음 내세웠다. 이미 사상, 정치, 군사강국이므로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국가적 ‘비전’이었다.

이후 이 구호는 매년 공동사설에 등장했다. 2004년은 ‘강성대국 건설에서 전환적 의의를 가지는 해’였고, 2006년은 ‘강성대국의 여명(黎明)이 밝아온 위대한 승리의 해’였다.

그러나 그동안 북한의 경제사정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2001년부터 실시한 제한적인 개혁개방 정책은 2005년 하반기 이후 오히려 뒷걸음질하고 있다. 2006년 이후 국가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때처럼 굶주림에 시달리는 주민들에게 매년 뭔가 전진하고 있다는 듯이 선전하는 강성대국 구호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북한 경제가 어려운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지배엘리트에게 있다. 이들은 주민 모두가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보다 오로지 자신들의 알량한 권력을 유지하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

무능한 지배엘리트와 낡고 왜곡된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북한 주민들에게 강성대국의 비전은 허상일 뿐이다.

신석호 정치부 kyl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