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배상근]돈 길 뚫어 ‘자산 디플레’ 막아야

  • 입력 2008년 12월 23일 03시 07분


많은 이들이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물가라도 내렸으면 좋겠다고 한다. 일부 품목의 가격이 일시적으로 내리면 싼값에 구매욕구가 생기고 물건을 사고 남은 돈으로 평소에 눈여겨봐온 것도 살 수 있으니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물가수준이 전반적으로 하락하고 앞으로도 계속 내릴 것으로 예상되는 디플레이션에 빠지면 전혀 다른 얘기가 된다.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보다 디플레이션이 훨씬 더 무서운 재앙이라고 말한다.

인플레보다 더 무서운 가치 추락

우선 디플레이션이 되면 사람들이 소비를 미룬다. 오늘 물건을 사는 것보다 내일 이후에 사는 것이 값이 싸져 득이기 때문이다. 소비를 미루는 일이 무슨 문제일까 싶지만 소비를 지연하면 기업의 매출이 줄어 수익성이 악화되고 기업은 생산 투자 고용을 줄인다. 이는 가계소득을 줄여 또다시 소비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한다.

다음으로 디플레이션의 시기에는 빚이 많은 사람이 불리하다. 대출을 받아 내 집을 마련한 사람은 집값이 폭락하면 집을 팔아도 빚을 갚을 수 없어 집을 날리고 빚만 떠안는 꼴이 된다. 대출을 받아 기업투자나 주식투자를 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대출 기간 동안 물가가 하락한 만큼 실질적인 이자상환부담이 늘어난 사람은 대출을 받기 꺼리고 소비나 투자를 줄인다.

미국에서 디플레이션의 조짐이 일부 나타나고 있다. 11월 소비자물가가 전월 대비로 61년 만에 가장 큰 하락폭인 1.7%나 내려 4개월 연속 하락했고 같은 달 소비판매도 1.8% 줄어 5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주택가격은 20% 이상 하락한 가운데 앞으로도 10∼30% 정도 더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취업자 수는 같은 달 53만 명이나 감소했고 실업률은 34년 만에 최악인 6.7%를 기록했으며 향후 10% 수준을 넘을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하지만 미국의 디플레이션 가능성에 대해선 회의적인 의견이 우세하다. 미국 정부와 연방준비은행이 재정지출 확대, 제로 수준의 정책금리 운용,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 정책을 포함해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나타났던 디플레이션의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했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올리비에 블랑샤르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현재 미국에서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확률은 5% 미만”이라고 단언했다.

한국 경제의 디플레이션 가능성은 어떨까.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7월 5.9%를 정점으로 4개월 연속 내리고 있고 내년에 더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물가상승률이 4%대를 넘은 상태이고 앞으로도 마이너스 물가상승률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지 않아 디플레이션에 진입할 것으로 생각하기 힘들다.

추가 금리인하 등 선제대응 필요

다만 주가와 부동산가격이 하락하는 자산디플레이션은 우려스럽다. 올해 코스피는 40% 이상 떨어졌고 하락세를 보이는 주택가격도 더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도 17일 “지금 걱정해야 하는 것은 투기보다 자산디플레이션이다”라고 말할 정도다.

따라서 부동산가격의 급락 등 자산디플레이션 추세를 완화하고 그 가능성을 전혀 배제하기 힘든 디플레이션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우선 추가적인 금리인하와 양적 완화 정책을 통해 시장에 유동성을 풍부하게 공급하고 자금 흐름의 막힌 곳을 뚫어 신용경색을 해소해야 한다. 또 감원이나 소득 감소가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높일 수 있으므로 감세정책기조를 유지하면서 소비자가 지갑을 선뜻 열도록 경제 전반에 파급효과가 크고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는 부문에 재정지출을 좀 더 과감히 확대할 필요가 있다. 디플레이션의 우려가 기우로 남길 바란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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