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백성기]지금이 벤처에 불을 댕길 기회다

  • 입력 2008년 12월 17일 03시 03분


미국발 금융위기로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11년 만에 또다시 위기국면에 빠졌다. 대부분의 산업이 불황의 한파에 떨고 있고, 실제 실업자는 317만 명을 헤아린다고 한다. 올해 대학문을 나서는 대다수 젊은이는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전에 없이 춥고 긴 겨울을 보내야 할 것 같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1930년대 미국의 뉴딜정책식 대형 공공사업을 일으켜 대규모의 고용을 창출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나 이는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할뿐더러 정치적, 지역적 이해관계에 따라 견해차가 커 추진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대기업에서 돌파구를 찾는 것도 여의치 않다. 그동안 성장을 주도해 왔던 수출이 격감하는 터여서 감원이라도 없으면 다행이다. 중소기업은 더욱 심각해 살아남기조차도 벅찬 상황이니 새 일자리를 기대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형편이다.

유일한 해결책은 새로운 기업을 창출하는 데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지금의 고용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새로운 기업의 창출은 어떻게 가능한가. 필자는 전국의 수많은 대학 실험실에 그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 연구결과, 창업에 활용을

현재 대학에는 박사급 고급 두뇌의 80% 이상이 종사하고 있다. 정부는 올 한 해 동안에만 2조 원 이상을 들여 이들의 창의적인 연구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그 결과, 매년 1만여 명의 박사가 배출되고 있고, 국제 저명학술지에 논문 2만5000여 편이 발표되고 있다. 게다가 국가가 지원하는 대부분의 연구과제는 새로운 기업 창출로 이어질 수 있는 신(新)지식이나 기술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들 연구과제를 통해 얻어지는 결과물은 대부분 논문이나 특허 형태로 끝나고 만다. 기업체에 이전돼 활용되는 결과물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고, 창업으로 이어지는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 이러한 구조적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대학의 연구 결과로 만들어진 요소기술을 자본으로 인정하고 그 기술을 활용해서 사업화하거나 벤처기업을 창업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긴 했다. 이른바 ‘기술지주회사’ 설립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 고용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창업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벤처 창업에 따르는 위험부담에 대한 정책적 배려와 지원방안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창업 10년 만에, 40년 역사의 한국 대표기업인 포스코와 삼성전자를 합친 것보다 더 큰 기업가치를 이뤄낸 구글(Google)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던 두 대학원생은 흥미 삼아 개발한 새로운 인터넷 검색엔진이 주변 친구들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자 더 큰 용량의 서버 구축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지도교수의 소개로 벤처 투자자를 만나게 된다. 겨우 아침 반나절 동안 두 젊은이와 마주한 벤처 투자자는 이들이 만든 구글이란 이름의 인터넷 검색엔진이 매우 합리적이고 획기적인 것임을 알게 된다. 그는 아무런 계약조건 없이 그 자리에서 10만 달러가 적힌 수표를 건네준다. 구글은 이렇게 해서 출범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수만 개 대학 실험실에는 풍부한 기술을 가진 우수인력이 포진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을 창업으로 이끌기 위해서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알아내 적시에 지원할 수 있느냐에 있다. 기술적 내용과 창업자의 창의력을 바탕으로 단 1%의 성공 가능성만을 믿고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는 창업자금과 투자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얘기다.

정부 과감한 투자-정책지원 해야

현실적으로 대학이나 기업에서 이런 여건을 조성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다. 정부만이 대학 실험실에 벤처 창업의 불이 붙도록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다. 설령 투자가 실패로 끝난다고 하더라도 실험실을 나서는 많은 젊은이는 새로운 벤처를 위한 소중한 경험을 갖게 될 것이다. 이 어려운 시기에 이보다 더 좋은 투자가 어디 있겠는가. 외환위기 때는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의 건전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함으로써 고도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었다. 이번에는 대학을 전면에 내세워 다양한 벤처사업에 불을 댕기도록 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경제난과 실업난을 극복할 거의 유일한 해법처럼 보인다.

백성기 객원논설위원·포스텍 총장 sgbaik@pos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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