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방형남]이명박-오바마-후진타오 트리오

  • 입력 2008년 11월 11일 20시 12분


이명박 대통령은 내년 1월 취임하는 버락 오바마 차기 미국 대통령과 잔여임기 4년을 함께하게 된다. 동맹국 정상끼리 임기가 겹친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나쁘지 않다. 서로를 잘 알게 될수록 신뢰가 생기고, 신뢰가 쌓이면 제반 현안을 해결하는 데 아무래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의기투합할 수만 있다면 향후 4년은 한미관계가 더욱 안정적일 것이라고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의 관계도 비슷하다. 지난해 시작된 후 주석의 집권 2기 5년은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과 그대로 겹친다. 이 대통령은 벌써 후 주석과 세 차례나 만났다. 국가 간의 관계는 정상들의 친소(親疎)관계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또한 나쁘지 않다.

4년 同行기회로 활용해야

미중 관계의 앞날이 일단 희망적인 것도 한미, 한중관계에 긍정적인 요소다. 오바마 당선인과 후 주석은 나흘 전 첫 통화에서 금융위기 해결을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두 지도자가 금융위기 해결을 위한 공조를 다짐하면서 양국 관계를 갈등보다는 화해와 협력으로 이끌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이 대통령과 미중 지도자의 장기 동행이 우리에게 유리한 여건이기는 하지만 자동적으로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기회를 활용해 국익을 극대화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반도 현안을 해결할 핵심은 누가 뭐래도 한미중 3국이다. 북핵 문제는 남북한과 미-일-중-러의 6자 현안으로 다뤄지고 있지만 6자회담 핵심국인 한미중이 북한을 상대로 컨센서스를 이루면 다른 참가국이 따라가는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북한의 급변사태도 언젠가는 남북과 한미를 넘어서는 다자 문제로 다뤄지겠지만 대응책을 만들어낼 최종 결정권자는 한미중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과 러시아가 개입할 소지가 있지만 한미중이 한목소리를 내면 거스르기가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오바마 정부와의 첫 단추를 잘 채우기 위한 준비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한미 관계가 미국 대통령의 성향과 정책에 크게 좌우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2001년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껄끄러운 상견례가 한미 관계에 미친 악영향이 대표적 사례다. 그런 악몽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한미관계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갖고 ‘초보 미국 대통령’ 오바마의 대(對)한반도 정책 수립 과정에서부터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 대통령은 오바마가 펼칠 세계 전략과 국내 정책의 청사진을 예견하면서 필요한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있다. 오바마는 내년 1월 20일 취임하지만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비롯한 주요 보직을 채우려면 취임 후 3∼4개월이 또 필요하다. 조금도 낭비하지 말고 철저하게 활용해야 할 시간이다.

미국 새 정부와의 관계 설정에 몰입하느라 중국을 소홀히 하는 듯한 인상을 주어서도 안 된다.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 노골적인 미국 편애가 한중 관계에 적지 않은 악영향을 미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콜과 미테랑이 남긴 교훈

핵심국 지도자들의 끈끈한 유대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유럽의 경험이 잘 말해준다. 1980, 90년대에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과 헬무트 콜 독일 총리가 손잡고 유럽통합을 이뤄냈다. 두 사람은 필요할 때 달려가 상대방을 지원하고 상대국 국민을 설득했다. 콜과 미테랑은 유럽통합을 이끈 기관차였다. 두 나라 지도자의 결속은 독일이 유럽의 주요국은 물론 미국 러시아의 동의까지 얻어 통일을 이룩한 밑거름이 됐다.

이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 그리고 후 주석이 앞으로 4년 동안 한반도와 동북아 문제를 놓고 머리를 맞댄다는 것은 우리로선 고무적이다. 한미중 지도자가 뜻을 모으면 동북아에 일종의 지역협력체제를 구축하는 일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이 점은 이 대통령에게 도전이자 기회다. 두 강대국 사이에서 ‘중간자’ 역할을 잘만 한다면 북핵 문제의 순조로운 해결이나 6자회담의 다자안보체제화(化)에도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지정학적으로나, 동북아의 과거사로 미루어 일본은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 빈틈을 한국이 치고 들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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