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광현]산타는 오지 않는다

  • 입력 2008년 11월 11일 02시 58분


요즘은 어딜 가도 경제 이야기다. 얼마 전 시를 쓰는 후배를 만났더니 “형, 우리 경제가 내년에 2∼3% 성장한다는데 나도 그러면 그만큼 좋아지는 거요?”라고 물었다. 2∼3%씩이나 좋아진다는데 왜 위기니 불경기니라고 하느냐는 말투였다. 과연 시인다운 발상이었다.

사실 국민 개개인과 각 기업이 모두 골고루 1%만 성장해도 문제될 게 없다. 살아가는 데 100분의 1 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 아닌가.

그러나 불행히도 경제지표는 그렇게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평균이란 울퉁불퉁한 수많은 현실의 추상이다. 여러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성장률이 1% 낮아진다는 것은 5만∼8만 명이 직장을 잃는다는 의미라고 한다. 또는 청년 백수그룹이 그만큼 늘거나 수많은 동네 식당, 호프집이 문을 닫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살림살이가 팍팍해지면 자살, 이혼, 범죄가 늘어난다는 사실도 통계로 확인된다. 사회 분위기도 흉흉해지는 것이다.

경제예측기관들은 올여름까지만 해도 내년 성장률을 4∼5%로 전망하다 최근 1∼2%까지 떨어뜨리고 있다.

보통 불경기가 막 시작될 때는 나쁜 것만 보이고, 좋을 때는 호시절이 영원히 갈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호황과 불황은 자본주의 역사를 관통해 반복되어 왔다. 위기는 끈질긴 다년생 풀이지만 극복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동양 최고의 철학서인 주역의 원리처럼 경제에서도 달은 차면 기울고, 겨울이 길면 봄이 온다는 얘기다.

다행히 시장경제는 자가 치료 기능을 갖고 있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가 아니더라도 부실한 기업이나 금융기관을 솎아내는 것이 전체 경제를 위해 좋은 일이다. 당장은 고통스럽더라도 길게 보면 곪은 종기는 터뜨리는 게 낫다.

문제는 길어질 수술 과정에서 양산될 실업자와 그 가족들이다. 그중에서도 비정규직, 영세 자영업자 같은 경제·사회적 약자들이 가장 먼저 튕겨 나올 것이다.

이제 세계적으로 금융위기가 막 실물경제로 옮겨가고 있는 단계다. 벌써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앞으로 감원과 해고 태풍이 몰아칠 수도 있다.

외환위기 때도 그랬다. 본격적으로 실업자가 쏟아져 나오고 노숙인들로 서울역 지하도가 붐비기 시작한 것은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 구제금융을 신청한 1997년 12월에서 서너 달 지난 뒤부터였다. 1년이 넘은 1999년 2월에 실업자가 최고치인 181만 명까지 늘었다.

이번에도 비슷한 길을 밟을 수 있다. 대량 실업사태는 가급적 없어야겠지만 어차피 뒤떨어지는 사람은 생긴다. 그럴수록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사회를 위해,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결과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제 길고 긴 저성장 시대를 살아가려면 고통을 분담하면서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다. 동시에 대책을 서둘러 준비해야 한다. 달라진 환경에 맞게 비정규직법을 서둘러 정비하고 대량실업사태에 대비해 사회안전망을 손질해야 한다. 이런 일은 성격상 정치권이 먼저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야 할 분야다.

올겨울에는 산타클로스를 기다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크고 작은 위기를 겪으면서 믿을 것은 우리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아오지 않았는가.

김광현 경제부 차장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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