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동영]선량한 납세자에 게으른 정부

  • 입력 2008년 11월 6일 02시 58분


지난달 31일부터 학교용지부담금 환급 신청이 시작됐다. 2005년 3월 이 부담금 부과가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온 지 3년 7개월여 만이다.

환급 대상인 전국 24만9928명의 시민은 학교용지매입 비용을 공동주택 입주자들이 내야 한다는 국가 시책에 호응했다. 그 돈은 4529억 원에 이른다.

정책이 잘못됐다며 아예 돈을 내지 않았거나 이의를 신청했던 사람들은 위헌 판결과 동시에 부담금 납부 의무를 벗었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에 따라 부담금을 낸 선량한 시민들은 위헌 판결이 나고도 3년 7개월이 지나서야 환급 신청을 시작하고 있다.

그 기간에 여러 차례 매매가 이뤄진 아파트에서는 최초 분양자와 매수자 사이에 부담금을 누가 부담한 것인지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벌써부터 신청 창구에서는 큰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경기도에서는 누가 환급 주체인지 가리지 못하는 경우가 30%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가 시책에 호응했던 시민들은 수년 전에 냈던 영수증을 찾고, 인터넷에서 신청서를 출력해 작성해야 하며 통장, 도장, 신분증을 갖고 시청이나 군청에 마련된 접수창구에 가야 한다.

생계 때문에 직접 가지 못하고 대리인을 보내려면 절차는 더욱 복잡해진다. 정부 말을 들었다가 부담금을 허공에 날릴 뻔한 시민들은 수년이 지나 그 돈을 찾는데도 자신들이 품을 들이고 절차를 밟아야 하는 처지다.

환급 고시 수일이 지났지만 대다수 대상자는 아직까지도 공식적인 개별통지를 받지 못했다. 위헌 판결 이후 환급까지 왜 오랜 시일이 걸렸는지 사과의 말도 한마디 듣지 못했다.

하지만 몇몇 자치단체에서는 시민단체를 통해 빨리 환급해 달라며 자신들의 권리를 강하게 주장해 오던 일부 대상자에 대해서 환급 공고일 이전부터 신청을 받아오고 있었다.

말없이 정부 정책을 따른 시민들은 환급신청에 있어서도 강력히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 비해 후순위로 밀리고 있었던 셈이다.

정부는 그동안 부담금을 냈던 시민들에게 환급 지연에 따른 사과도 없었고 단지를 찾아가 방문 신청접수를 받는 방안도 마련하지 않았다. 정부 시책에 호응한 대가가 그렇지 않을 때보다 못한 상황이라면 앞으로 누가 고분고분 정부 말을 듣겠는가.

위헌 판결이 난 이후 지금까지 선량한 납세자를 위해 정부가 준비한 조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동영 사회부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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