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광영]경찰, ‘운전면허 전봇대’ 뽑을 의지 있나

  • 입력 2008년 10월 15일 02시 57분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초 운전면허시험을 대표적인 ‘규제 전봇대’로 지목했다. 이에 법제처는 기능시험을 도로주행시험과 통합해 현행 7단계를 2단계로 줄이는 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주무부서인 경찰은 면허취득 간소화 의지가 갈수록 후퇴하고 있다.

운전전문학원에서 이뤄지는 장내 기능교육은 ‘고비용 저효율’ 면허 취득구조의 핵심요인으로 지적돼 왔다. 수험생들은 40만∼50만 원의 돈을 내고 최소 7차례 이상 교외에 위치한 운전학원을 오가야 했다. 그러다 보니 속성학원을 찾아 합격공식만 익히는 등 폐해가 컸다.

경찰도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올해 4월 “기능시험과 주행시험 통합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7월 공개토론회에서 “통합은 하지 않고 운전학원 기능교육 시간을 20시간(1종 보통 기준)에서 10시간으로 줄이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당시 ‘기능교육 시간을 3시간으로 대폭 줄여야 한다”는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경찰 측 참석자가 “운전학원연합회에선 20시간을 고집하니 10시간 정도로 타협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2일 공청회에서는 더 후퇴했다. 면허시험장 내 교통안전교육 등을 없애기로 했지만 핵심사안인 기능교육 시간은 15시간으로 줄이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면허 취득비용도 현행 90만 원에서 70만 원 선으로 줄이는 데 그쳤다.

경찰은 “우리의 열악한 도로여건상 안전을 위해 기능시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교통전문가들은 “대부분의 사고가 운전기능 미숙보다 안전의식 부족이나 교통법규 위반에 따른 것”이라고 반박한다.

이런 가운데 법제처 국민불편법령개폐센터에는 기능교육의 폐해를 지적하는 의견이 600건 이상 올라오는 등 기능시험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일부 학원업주들도 기능시험장이 채산성 악화의 원인이라며 저비용 구조로 전환하자고 말하고 있다. 기능교육을 위해선 3000평 이상 용지를 확보해야 하고 주유탱크, 감점인지센서 등의 시설을 유지하는 비용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경찰은 다음 달 운전면허 취득 간소화 법안을 완성해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최근 한 경찰 관계자는 사석에서 “비싸고 복잡한 면허취득 관행을 고쳐야 한다는 건 알지만 운전학원도 살길을 터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경찰이 학원업주의 살길이라는 ‘소의(小義)’와 규제 전봇대를 뽑는 ‘대의(大義)’ 사이에서 어떤 결론을 내릴지 주목된다.

신광영 사회부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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