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동원]“멀리들 보시게나”

  • 입력 2008년 9월 30일 02시 58분


“시간 좀 내 주세요. 선배님.”

요즘 졸업을 앞둔 후배들이 진지한 목소리로 연락을 해 온다. 취업 시즌이 돌아온 모양이다.

기자 생활을 하는 선배이니 세상 구석구석을 잘 알 것 아니냐며(꼭 그렇지도 않다) ‘생생 정보’를 들려달라고 한다.

청년백수 100만 명 시대에 직장을 고른다는 게 배부른 고민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취업을 앞둔 심정을 잘 알기에 조금이라도 ‘도움 될 만한’ 사례를 찾아보느라 식은땀이 난 적도 없지 않다. 그럴 때면 직접 겪은 다음 사례를 들려준다.

#기자의 첫 직장은 종합무역상사인 S물산. 1986년 입사 당시는 종합상사 인기가 엄청 높았다.

정부의 수출 우선 정책에다 이른바 ‘김우중 신화’가 한창인 시기였다. 007가방 들고 세계를 누빈다는 ‘국제신사’ 이미지까지 겹쳐 상사맨의 주가는 절정이었다. 반면에 지금은 글로벌 선두기업으로 우뚝 선 S전자의 입사 선호도는 그다지 높지 않던 때였다. 각 그룹은 한 달간의 합숙 교육을 마친 후 근무 회사를 배치하곤 했다. 교육이 끝난 후 S전자에 배치된 입사동기생 20여 명은 원하는 S물산 대신 S전자로 발령 나자 잇달아 사표를 던졌다.

실제 동기 A의 얘기다. S전자로 배치된 후 입사 두 달 만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다시 종합상사 문을 두드려 당시 잘나가던 D상사에 두 번째 취업을 했다. 상사맨으로 순탄하게 직장생활을 하는 듯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D그룹 몰락이 시작됐다. D상사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겪자 결국 직장을 잃는 처지가 됐다. 그는 요즘 직장을 구하고 있다.

반면 동기생 B의 행보는 이랬다. 그도 입사 초 S전자로 발령 났다. 종합상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몇 달간 깊은 고민에 빠졌다. 불만스러웠지만 일단 꾹 참았다. 성실하게 일한 덕에 인정을 받고 지금은 S전자 임원이다. 수억 원대 연봉도 받는다. 친구 모임에서는 종종 알아서 계산까지 한다. S전자가 매출액이나 선호도에서 종합상사를 껑충 추월한 것은 금세였다. 그들이 입사한 지 불과 4, 5년밖에 흐르지 않았다. 불과 몇 년 뒤의 세상 변화를 간파하지 못했던 셈.

#1990년대 초중반은 종합금융사(종금사)의 전성시대였다. 일반회사의 두 배 연봉을 주는 데다 근무 여건도 탁월하다는 소문이 퍼지자 단연 ‘꿈의 직장’으로 통했다. 공기업에 다니던 대학 동기생 C도 안정된 직장을 나와 모 종금사로 옮겼다. 하지만 장밋빛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1997년 말에 불어 닥친 외환위기로 종금사는 줄줄이 간판을 내렸다. C도 별수 없이 직장을 잃었다.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종금사 근무 당시 회사 유상증자 때 매입한 자사주(株)가 사실상 휴지가 되자 억대 빚을 졌다. 종금사에 근무하던 20여 명의 대학 동기생 중 지금 금융계에서 일하는 사람은 단 두 명뿐.

하늘을 찌를 듯한 인기는 오래지 않아 사라질지 모를 무지개와 비슷하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라는 것은 정말이지 여러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말이다. 지나고 보니 ‘현재 인기’ 대신 ‘미래 가치’를 냉철하게 파악하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직업을 택하는 것, 그게 곧 능력이다.

‘멀리 볼수록 좋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는 여기서 찾아야 할 듯싶다.

취업 앞둔 청춘들이여, 파이팅!

김동원 국제부 차장 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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