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상필]‘혼 담긴 신도시’ 조선에서 배우자

  • 입력 2008년 9월 24일 03시 00분


신문 잡지 인터넷의 광고를 보면 우리나라는 신도시 천국처럼 보인다. 발 빠른 광고주는 어떻게든 신도시와의 관계를 내세우기 바쁘다. 부동산 개발에 신도시 이미지를 연결하는 것은 집 장사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도시 이미지는 우리 정신에 깊게 뿌리박고 있다. 조선 후기의 대표 지리학자였던 김정호 선생은 조선의 대표 신도시였던 한양을 ‘착함의 으뜸’, 수선(首善)으로 표현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광고 문구로 이용되는 신도시는 길 잃은 개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국을 처음 방문한 외국인이 수많은 신도시 광고 문구를 보고 ‘도대체 대한민국에는 신도시가 몇 개인가요’라고 묻는다면 많은 사람은 당황하면서 몇 개만을 겨우 떠올릴 것이다. 과연 우리나라에 신도시를 엮는 공통분모가 존재하는가? 불행하게도 그렇지 않다.

놀랍게도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우리나라에는 사회 이념과 정신을 담은 우수한 신도시의 실체가 있었다. 신도시에 대한 기록은 삼국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과거에서 지금까지 가장 많은 도시를 계획하고 지은 시기는 조선시대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대동지지(大東地志), 여지도(輿地圖) 같은 고서를 보면 이때 계획하고 만든 도시는 300개가 넘는다.

당시의 도시 조성 원리는 그 자체가 명품(名品)이다. 지형지세를 이용하여 바람과 물을 다스리고 소위 명당이라는 터에 도시를 입지시켜 주요 시설을 앉혔다. 도시 모습도 자연과의 조화 속에 만들었다. 아직도 곳곳에 남은 조선시대 신도시인 도성(都城)과 읍성(邑城)은 찾기도 쉽다. 자연의 모습을 이용하여 도시의 인지성(Cognitivity)을 고려한 전통도시 조성 원리는 세계적 유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0년대 이후 케빈 린치, 도널드 애플야드 등 서구의 대표 도시학자가 주장했던 도시 이미지 이론보다 수백 년 앞서 있다. 여전히 우리나라는 많은 신도시를 발표하고 만든다. 하지만 전통적 특징을 살린 신도시의 원형을 찾기 위한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넓게 쭉 뻗은 도로와 비슷비슷한 모양의 아파트를 늘어놓는 도시 건설을 넘어서 더 나은 도시 조성 모델의 개발이 필요하다. 이제는 세계적 자산이라고 볼 수 있는 한국형 신도시 조성 모델을 찾아 알려야 한다. 그렇게도 찾아 헤매는 미래지향적 신도시 조성의 솔루션은 다름 아닌 자연을 존중하며 이용했던 전통적 도시 건설의 지혜요, 자연과 삶을 연결했던 우리의 정신이다.

우리 선조가 그랬듯이 우리 정신 속에 존재하는 도시 모습을 현실로 이끌어내어 도시의 실체를 만들어야 한다. 정감 어린 편리한 도시 공간 속에서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지상에 낙원 같은 도시 장소(Urban Place)를 건설하는 실천적인 태도의 변환이 필요하다. 기술적으로는 세계적 수준이 된 우리의 도시 건설 기술에 혼을 불어넣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도로 상하수도 교량을 만드는 토목, 이를 기반으로 삶의 공간을 이루는 건축 조경 및 기타 시설물이 자연을 바탕으로 건강한 도시 모델 속에 통합되는 신도시를 조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과거의 훌륭한 정신을 이어받아 미래도시를 만들어 나가는 자산으로 활용하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박상필 KAIST 미래도시연구소 선임연구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