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상영]올림픽과 군대

  • 입력 2008년 8월 28일 02시 57분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단이 뛰어난 성적을 올렸지만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선수가 하나 있다. 복싱의 백종섭 선수다. 그는 16강전에서 입은 부상 때문에 8강전에 나가지 못하고 기권했다. 복싱은 3, 4위전이 없어 8강전에서 이기면 동메달 확보로 병역의무를 면제받는데 그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다. 기관지 파열로 경기를 강행하면 자칫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의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는 “목숨을 걸고 뛰겠다”며 출전을 고집했다고 한다. 권투 하나만 보고 달려온 그의 나이는 28세다. 이제 그는 둘째를 임신한 아내와 딸을 둔 채 입대해야 한다. 결국 기권을 하면서 눈물을 쏟았다는 젊은 운동선수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병역면제 위해 사력 다한 선수들

온 국민에게 가슴이 확 뚫리는 시원함을 안겨준 야구대표팀의 금메달 뒤에도 병역과 관련한 가슴 찐한 에피소드들이 있다. 이미 병역문제가 해결된 이승엽 선수가 굳이 이번 올림픽에 참가한 이유는 병역이 해결 안 된 후배들의 간곡한 도움 요청을 뿌리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대회 초반 부진으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그는 군 면제를 확정짓는 일본과의 4강전에서 결승홈런을 날린 뒤 눈물을 쏟아 후배들을 울렸다. 장딴지 부상으로 출전이 어려웠던 김동주 선수는 내야땅볼을 치고도 전력질주했다. 후배들은 ‘우리들의 병역면제를 위해 선배들이 이렇게까지 해 주는구나’라는 생각에 똘똘 뭉쳐 펄펄 날았다.

요컨대 한국야구대표팀 24명은 아직 병역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후배 선수 14명을 위해 혼연일체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 선수들은 짐꾼을 고용해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지만 한국의 후배들은 고마움에 선배들의 짐까지 들어줬다. 이렇게 다져진 팀워크와 정신력이 프로야구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로 구성된 일본대표팀과 아마야구 최강자라는 쿠바대표팀을 2번씩 연파한 원동력이었다.

평범한 아들 둘을 각각 육군과 해병대에 맡겨놓은 아비의 입장이 되어서 그런지 이런 이야기들이 이제 남의 얘기 같지 않다. 한국 남자들에게 병역은 반드시 수행해야 할 의무이자 개인적으로는 젊은 날 인생설계를 하는 데 최대의 변수로 작용한다. 군대에 안 가면 남들보다 2년 이상의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유혹 때문에 이런저런 병역 비리가 끊이지 않는다. 잠시만 쉬어도 기량 회복이 어렵다는 국가대표급 운동선수들에게는 그 절박함이 더할 것이다. 멀쩡한 무릎 연골에 수술 칼을 대고 군대를 면제받으려다 처벌받은 선수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기억한다.

병역 의무는 우리 사회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슈 가운데 하나다. 남자라면 누구나 가야 하고 아들을 둔 부모는 누구나 보내야 하기 때문에 특혜에 대한 사회적 반발도 크다. 그래서 유력한 대통령 후보에게 결정타를 먹이기도 하고 장관직에서 낙마시키기도 한다. 한창 기량이 뻗어나는 운동선수와 인기 절정인 연예인들도 자주 병역이라는 암초 앞에서 좌초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병역에 대한 특혜는 엄정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군 복무에 필적할 만한 공헌을 국가와 사회에 한 경우에 한해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원칙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 권력과 돈으로 군대에 가지 않을 수 있다면 대표선수들이 병역면제를 위해 똘똘 뭉쳐 하나가 되고 뜨거운 눈물을 쏟는 감동도 없었을 것이다. 다른 나라 선수들은 죽어도 이해할 수 없는 한국적 상황이다.

병역법 개정안에 담아야할 것들

마침 여야 의원들이 고위 공직자와 고소득자, 연예인, 프로 운동선수들의 병역을 특별 관리하도록 병역법 개정안을 발의할 것이란 소식이다. 최근 5년간 적발된 병역비리자 634명 가운데 기업인 의사 유학생 연예인 체육인이 374명(59%)이란 설명이 뒤따랐다. 특혜에 대한 이런 사회적 감시망은 더욱 촘촘해져도 나쁠 게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야구대표팀처럼 국민에게 짜릿한 감동을 선사할 수만 있다면 면제받는 사람이 웬만큼 늘어도 괜찮겠다. 그래야 동기 부여도 더 확실히 될 것이다. 16강 탈락으로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린 축구선수들이 분발해 올림픽 메달을 따내 국민을 열광시킨다면 누군들 그들의 군 면제에 토를 달겠는가.

김상영 편집국 부국장 you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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