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육정수]法治 죽이고 경제인 살린 8·15특사

  • 입력 2008년 8월 13일 22시 37분


8·15 광복절 특별사면의 뒷맛이 개운치 않다. 그렇지 않아도 걱정되는 이 나라의 법치와 법질서를 이명박 정부가 어떻게 감당하고 다시 세우려는지 답답하다. 경제단체들의 기업인 106명 사면청원은 74명을 사면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성공률 70%는 전례 없는 일이다. 투자 활성화, 해외시장 개척,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기업인 대폭 사면이 불가피하다는 데 정부 측과 사전 교감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 대통령 취임 이후 두 번째인 이번 특사는 기업인과 정치인, 공무원들을 위한 잔치였다. 기업인 외에도 전직 국회의원 등 정치인 1914명, 현직 공무원 32만여 명이 사면됐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이른바 특권층이다.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법을 지켜야 할 공인(公人)들이다.

정부가 내세운 ‘국민 대통합과 경제 살리기’라는 사면의 명분을 국민이 어느 정도 수긍할지 의문이다. 그런 명분이라도 살리려면 대상자들을 좀 더 치밀하게 검토해 엄선했어야 했다. 확정 판결문의 잉크가 채 마르지 않았거나, 폭력사범으로 분류된 재벌 총수까지 마구 끼워 넣었다. 심지어 전직 대통령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정략적 사면도 눈에 띈다.

대통령의 특별사면 남용을 막기 위해 작년 12월 개정해 올 3월부터 시행된 새 사면법의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개정 사면법은 특별사면과 감형, 복권(復權)의 적정성 여부를 심사하는 사면심사위원회를 두도록 했다. 하지만 이번 심사는 겨우 1시간 반 만에 끝났다. 심사위원회가 대통령의 의도를 별다른 이의 없이 받아들인 탓일 것이다. 심사위원 9명 전원의 소신이 똑같았는지 궁금하다. 시행령엔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심사 내용을 공개할 수 있게 돼 있지만 이것도 생략됐다. 국무회의 역시 그냥 통과됐다.

기업인과 정치인 등은 여론의 비판만으로도 실제 형사처벌보다 더 치명적일 수 있다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인으로서 도덕적, 지도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사회적 대가이지 형벌 그 자체는 아니다. 특권층 범죄를 좀 더 엄격히 단죄해 국민의 법의식을 높여야 할 책임이 있는 검찰과 법무부가 오히려 이번 사면내용에 동조한 것은 자기모순이다. 사법부의 권위와 독립성, 판결의지를 훼손한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무엇보다 법을 경시하는 국민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사회적 손실이다. 준법의식은 한번 붕괴하면 다시 세우기가 결코 쉽지 않다. 법치와 법질서를 희생시키면서 경제 살리기에 매진하겠다는 발상은 자칫 두 가지를 모두 잃을 수도 있다. 역대 정부의 기업인 사면이 경제 살리기에 도움이 됐다는 증거도 없다. 이번 특사를 두고 ‘경제 살리기’가 아닌 ‘경제인 살리기’라는 비아냥거림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 대통령은 “법질서를 엄정히 지켜 나간다는 새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면서 이번 특사는 경제 회복을 위한 예외적인 특단의 조치임을 강조했다. 무리하게 명단에 들어갔다는 지적을 받는 재벌 총수들은 “사회봉사와 사회공헌 활동을 계속하겠다” “다시 태어났다는 각오로 국가에 기여하겠다”고 화답했다. 대통령과 기업인들의 약속은 한 차례 귓전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아니다. 국민이 두고두고 지켜볼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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