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윤평중]무너진 공공성, 사라진 리더십

  • 입력 2008년 8월 13일 03시 01분


사고를 친 연예인이 대중의 빗발치는 비난 앞에 고개를 숙일 때가 있다. 스타덤에 올라 명성과 부(富)를 이룬 연예인이 잘못을 빌면서 ‘공인(公人)’임을 잠시 망각했다고 사죄하는 것이다. 인기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경우다.

그러나 공인이나 공공성(公共性)의 지평은 이보다 훨씬 넓고 깊다. 공(公)은 무엇보다 정치와 리더십에 적용되는 이념이다. 옛날부터 선공후사(先公後私), 즉 공익을 사사로운 일보다 중시하는 것은 훌륭한 지도자의 변함없는 덕목이었다. 직접민주주의를 꽃피웠던 고대 그리스인들은 개인적인 일이나 돈 버는 데만 관심을 갖는 사람을 제대로 된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민주주의를 알지 못했던 봉건시대의 공자조차도 정치란 세상의 모든 일을 공익을 위해 처리하는 것(천하위공·天下爲公)으로 이해했다.

흔히 사용되는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다’라는 표현도 공동체적 삶의 기본을 지칭한다. 공동선(共同善)의 강조, 공동체에 대한 헌신, 공익의 추구는 모두 공공성으로서의 정치를 측정하는 불변의 잣대인 것이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선포한 헌법 1조 1항도 공공성과 연관된다. 공화국(republic)이란 말 자체가 ‘공적인 것(res publica)’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이는 공화국의 이념이 본질적으로 나라 전체의 공동선을 지향한다는 사실을 뜻한다. 한마디로 공화국은 ‘시민 모두를 위한 나라’인 것이다.

정치가는 公益위해 私益 버려야

북한이 공화국이라 자처하는 게 말이 안 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한 사람의 지도자를 위해 모든 인민이 노예의 삶을 이어가는 사회, 한 가문의 사적 이해관계가 국가의 모든 영역을 식민화한 체제가 제대로 된 나라일 수는 없다. 국가 공공성 전체를 지도자 개인에 종속시킴으로써 한반도 북부에서 공화국의 이념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이것이 북한을 실패한 국가로 만든 근본적 원인이다. 지도자의 절대 권력을 지키기 위해 수백만 인민이 굶어 죽는 것을 감수한 대기근 사태는 현재의 북한 체제가 결코 ‘모든 인민을 위한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웅변한다.

촛불집회 참여자들이 평화적인 축제로 민주공화정을 노래할 때 만인의 나라는 찬란한 빛을 내뿜는다. 그러나 폭력화하고 불법적인 시위가 관행이 될 때 시민의 나라라는 꿈은 균열되고 만다. 현실 비판적 사회운동이 공익을 망각한 채 자기 집단의 파당적 이해에 봉사할 때 시민 모두의 나라는 여지없이 파괴된다. 공공성을 빙자한 시민사회의 과잉 정치화가 오히려 공화국의 통합성을 위협하게 되는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이 이끄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공화정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제 길을 벗어난 국가와 시장으로부터 온다. 최고의 공복인 대통령이 공과 사를 나누지 않고 특정 지역과 일부 집단 출신만을 중용할 때 국가의 기틀이 흔들린다. 사적 친소관계가 공적 영역을 잠식하는 것이다. 천하의 인재를 널리 구해 국민 모두를 이롭게 한다는 국정(國政)의 근본이 망각되고, 권력의 떡고물을 향해 달려드는 패거리의 이권다툼이 정치를 파괴하고 만다.

공인의 자질은커녕 보통 사람의 평균 상식조차 갖추지 못한 고위인사들의 실언과 망언은 조롱과 환멸의 대상이 된다. 집권 이래 연속적으로 터지고 있는 정부 여당의 부정부패 사건은 자연스러운 귀결이 아닐 수 없다. 공공 마인드를 결여한 것으로 비치는 이명박 대통령과 실용정부의 지지율이 너무나 낮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명박 정부가 나라의 운영과 회사 경영을 혼동할 때 공공성은 더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된다. 생산력과 창조력을 키우는 시장의 힘은 참으로 위대하지만, 민주질서에 의해 견제되지 않는 시장은 모든 걸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되기 쉽다. 삼성 사태는 단적인 사례일 것이다. 개인의 자유를 가능하게 했던 시장의 힘이 너무 커져 오히려 시민의 자유를 위협하고 민주질서를 왜곡하는 모순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공공마인드로 섬김의 리더십을

대중문화의 꽃인 연예인도 공인의식을 공언하는 상황에서 나라를 책임진 정치인이 가야 할 길은 너무나 멀다. 독주하는 대통령과 무책임한 정당은 공공성의 회복을 갈수록 어렵게 한다. 공동선에 몸을 바치는 지도자만이 국민 앞에 당당할 수 있다. 공공 마인드로 무장한 의젓한 리더십은 대화와 타협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제 이명박 정부는 질주를 멈추어야 한다. 공공성의 원칙에 기초한 섬김의 리더십만이 나라를 살리는 것이다.

윤평중 객원논설위원·한신대 교수·사회철학 pjyoon56@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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