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최승호]‘사막의 기적’ 동반자 되자

  • 입력 2008년 8월 9일 03시 01분


파키스탄의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은 수년 전 영국 BBC TV와의 회견을 통해 “이슬람권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낙후되고 계발되지 못한 취약한 그룹”이라고 한탄했다.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모하맛 전 총리도 재임 중 이슬람권의 낙후성에 대해 종종 탄식의 변을 토로했다. 이슬람권과 아랍권이 같은 범주는 아니지만 아랍 세계가 예외 없이 이슬람권에 속해 있는 만큼 이슬람권 정치지도자의 탄식은 아랍권에 상당 부분 적용될 수 있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2002년 최초로 발간한 ‘아랍 인간개발 보고서’는 아랍이 전반적으로 낙후됐다고 진단하면서 인적자원 개발의 미흡을 그 요인의 하나로 규정했다. ‘지식사회 구축’이라는 부제가 붙은 2003년도 보고서는 “인구 100만 명당 과학기술논문 수를 비교할 때 한국은 1981년에서 1995년에 24배로 증가한 반면에 아랍권은 2.4배 증가에 그쳤다”고 했다. 이 보고서는 또 “1980∼1999년에 미국에 등록된 아랍국가의 국제특허는 370개에 불과했지만 한국은 1만6328개”라고 소개했다.

최근 아랍의 많은 지식인과 사회 지도층 인사가 언어 문학 지성 과학적 문화유산에서 세계를 선도했던 아랍권의 퇴보에 자성의 목소리를 활발하게 개진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열망도 높아지며 종교적 이념적 편향을 지양하면서 효율적인 국가체제 수립과 경제발전을 위한 개혁 조치를 추진하고 있다.

최근 눈에 띄는 긍정적인 동향은 인적개발, 즉 대학교육 진흥과 문화 창달에 큰 관심을 갖고 대단히 야심적인 투자를 한다는 사실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오만 등 걸프지역 산유국은 미래 세대를 위한 인적 물적 인프라를 구축하고 문화 창달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려고 한다.

사우디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국왕은 지식경제기반 구축을 지향하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대학을 육성하려고 100억 달러(약 10조 원)의 재원을 조성했다. 아랍에미리트도 아랍의 지식사회를 위해 같은 규모의 기금을 만들었다. 카타르는 교육도시 건설에 30억 달러를 투자해 이미 미국 코넬대 의과대학 분교, 카네기멜런대 경영 및 컴퓨터공학대학, 버지니아주립대 응용미술대학을 개설해 신입생 모집 등 학사일정을 시작했다.

아랍권 내부의 투자양태, 아랍 국가 사이의 경제관계도 급격히 변하고 있다. 투자와 기업 활동을 통한 외부 세계와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상거래 관행에서도 실용주의적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이슬람 금융은 국제 금융계에서 영향력을 급격히 키워가고 있다.

1970년대 건설 진출이 주축이던 한국의 대아랍 관계는 최근 중화학 플랜트 건설과 자본재 및 폭넓은 범주의 소비재 교역관계로 발전하고 있다. 대아랍 관계의 폭과 깊이를 다른 차원으로 격상시켜 나가야 할 당위성이 커지고 있다. 상호 간의 교류를 넘어 정치 경제 사회적 동반자 관계로 심화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정보통신 생명공학 의료 분야에서의 산학협동, 학술·학예교류 증진, 청소년 교류를 포함한 인적교류 확대, 문화교류를 통한 상호 간의 이해 제고, 이를 통한 국민 간의 우호친선에 대해 한국과 아랍 상호 간에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상대방의 역사와 전통, 문화와 가치관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이를 통해 상호 존중의 관계를 강화하기를 기대한다.

아랍은 무엇보다 짧은 기간에 눈부신 성장과 발전을 이룬 한국의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최근 출범한 한국-아랍소사이어티는 이런 시대적 흐름을 바탕에 깔고 이에 부응하는 사업목표를 갖고 있다. 사회 각계의 관심과 참여를 기대한다.

최승호 한-아랍소사이어티 사무총장 전 주이집트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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