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정민]韓목청 vs 日기록…누가 이길까

  • 입력 2008년 8월 9일 03시 01분


1939년 경성제국대학 대륙문화연구회는 장장 1700여 쪽에 이르는 ‘북경·열하의 사적관견(史的管見)’이란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들은 보고서의 결론을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중 요동 벌판을 한번 통쾌하게 울어볼 만한 터라고 말한 ‘호곡장론(好哭場論)’의 인용으로 맺었다. 만주 지역의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한 국책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그들은 당시 우리도 거들떠본 적이 없는 연행 기록 속의 관련 정보까지 샅샅이 훑었다.

최근 간행된 1894년 일본인 혼마 규스케의 조선정탐기록인 ‘조선잡기(朝鮮雜記)’를 읽어보니, 침략에 앞서 그들이 어떻게 조선 내부를 염탐하고 정보를 구축해 나갔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시기 일인들이 쓴 조선견문록류의 책은 간행된 것만 수십 종을 헤아린다. 그들은 하나하나 정보를 모아 침략을 위한 준비를 갖추어 나갔다. 그리고 준비가 끝났을 때 침략을 감행했다.

임진왜란 당시 종군했던 일본 장수나 승려가 쓴 일기는 종류도 많고 분량도 방대하다. 그들은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충무공의 전술을 연구하고, 해상에서의 패전 원인을 꼼꼼하게 분석했다. 당대뿐 아니라 현재까지도 이런 연구는 줄을 잇는다.

표류 관련 기록만 해도 그렇다. 1000건에 1만 명이 넘는 조선 표류민 관련 공식 기록이 이미 일본인 학자에 의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지 오래다. 관련 연구도 활발하다. 일본인이 조선에 표류한 사실과 관련된 기록도 일본 쪽에 100건 가까이 남아 있지만 우리나라 쪽의 연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참 이상하다. 우리는 왜 충무공 이순신의 영웅적인 승리담에만 도취하고 거북선의 위용만 자랑하는가? 왜 의병의 활약은 과장하면서, 참담했던 육지전에서의 패배는 돌아볼 줄 모르는가? 어쩌자고 충무공의 호국정신이나 신출귀몰한 전술에 대한 연구는 뒷전에 두고, 몇십억 원씩 들여가며 전투에 패해 가라앉은 거북선의 잔해만 뒤지고 있는가? 차라리 그 돈을 관련 연구에 쏟아 붓는 편이 백번 옳지 않은가?

독도 문제가 마침내 저들이 원하던 대로 본격적으로 공론화되는 모양새다. 우리는 대통령이 격분하고, 총리가 독도로 단숨에 달려갔다는 소식만 있지 본격적인 학술적 대응의 준비는 좀체 보이지 않는다. 미국이 독도 영유권 표기를 원상회복시킨 것은 우리가 감사할 일도 감격할 일도 아니다. 본질적 문제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얘기다. 독도가 우리 영토로 표시된 옛 지도의 발견에 환호하지만, 반대도 얼마든지 있다.

저들이 도대체 무얼 믿고 어떤 근거에서 저런 주장을 하는지 사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저들은 수십 년 차근차근 준비해서 이제 준비가 다 끝났다고 생각되자 문제를 본격적으로 들고 나왔다. 발언의 수위는 하루가 다르게 높아질 것이다. 시끄러워질수록 기뻐할 쪽은 저들이다. 그런데도 언론은 구체적 쟁점 현안에 대한 분석은 없이 삭발 항의나 성명서 발표 소식만 전하기 바쁘다.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문제가 되는지는 따져볼 생각도 않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만 한다.

저들이 전 세계에 수백 수천의 일본학 전문가를 지원하고 양성하는 동안, 우리는 소설책 시집 몇 권 겨우 영어로 번역해 놓고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말하고 노벨 문학상을 꿈꾼다. 단언컨대 독도 문제가 한국과 일본의 손을 떠나 제3자의 판단에 따라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우리의 필패로 귀결될 것이 틀림없다. 우리는 만날 소 다 잃고 나서 외양간만 고치고 있을 것인가? 그때 가서 또 누구를 탓할 것인가? 결코 흥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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