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서영택]종부세, 너무 가혹하다

  • 입력 2008년 8월 6일 02시 59분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는 여러 세금을 신설하거나 폐지했다. 필자는 종합부동산세를 보면서 1989년 신설됐다가 1998년 폐지된 토지초과이득세가 떠올랐다. 이 제도의 집행을 총괄했던 사람으로서 두 가지 세금은 유사한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토초세는 지가 상승 이익을 기대해서 보유한다고 인정되는 유휴 토지를 과세 대상으로 했다. 종부세는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고 주택가격을 안정시키면서 속칭 주택부자(다주택 보유자, 고급주택 보유자)에게 중과해서 소득 재분배에도 기여하겠다는 것이 주목적이다. 두 세금 모두 조세 이외의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데 가장 큰 문제가 있다.

토초세가 헌법 불합치 결정으로 폐지된 이유의 하나는 미실현 자본이득(unrealized capital gains)에 대한 과세라는 점이다. 종부세는 주택가격의 상승으로 재산상의 이익을 보므로 투기 억제 차원에서 중과세를 하는 제도이다. 미실현 이익에 과세하는 결과가 되는데 나중에 실제로 집을 팔 때는 실현된 자본이득(realized capital gains)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내므로 이중과세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같이 종부세는 토초세와 비슷한 정책 목적과 과세 내용을 갖는데 종부세가 더 가혹하다고 볼 수 있다. 토초세는 투기지역에 있는 토지 과다 보유자의 지가 초과상승분에 대한 과세이다. 미실현 자본이득에 대한 과세이긴 하나 세금이 무겁고 부담스러워서 유휴 토지를 매각하거나 나대지에 건물을 지으면 세금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종부세는 주로 국민의 주거공간인 주택에 대한 과세여서 부담이 지나쳐도 보유 주택(특히 1가구 1주택의 경우)을 쉽게 처분할 수 없다. 과도한 양도소득세 부담도 걱정거리가 된다. 종부세 시행 후 정책 의도대로 주택 공급이 늘어나지 않고 가격도 크게 하락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재산 관련 세금은 취득가액 또는 취득 당시 재산평가액을 기준으로 보유세를 매기고(중과세를 하더라도), 팔 때는 집값 상승에 따라 실현된 재산이익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과세해야 한다. 외국의 경우 이런 방식이 일반적이다. 종부세처럼 매년 달라지는 주택이나 나대지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제도는 불합리하기 짝이 없다. 주택가격 상승이 전적으로 주택 소유자의 책임만은 아니지 않은가.

종부세 부담의 적정성도 문제이다. 세원(稅源)은 기본적으로 소득과 재산, 소비지출로 볼 수 있는데 이 중에서도 소득이 기본이고, 재산은 소득과세의 보완세로 운영하는 방안이 외국의 일반적 사례이다. 또 재산과세는 지방세로 하되 무리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 조세원칙이다.

보유 재산의 처분을 고려해야 할 정도의 상황이 된다면 그야말로 지나친 과세 조치이다. 특히 1가구 1주택은 평생 열심히 일해서 모은 가족의 기본재산이라고 봐야 하는데 일반 평균 주택 가격보다 높다고 해서 중과세하는 정책은 어떤 명분으로도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자신의 소득만으로 해마다 몇백만 원 또는 몇천만 원의 재산세를 별 부담 없이 내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이 큰 부담감을 느낀다면 조세의 적정성 원칙에 크게 어긋난다.

나라의 살림살이에 필요한 재정수입을 국민으로부터, 가급적이면 큰 부담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면서 확보하는 것이 조세제도의 기본이다. 조세정책은 필요한 재정수입을 확보하면서 부차적으로 소득 재분배나 부동산 투기 억제 등 다른 정책 목적에 이용할 수 있지만 이는 최소한에 그치고, 가급적 중립적이며 정상적으로 운용해야 모든 계층의 국민을 편안하게 하고 나라 경제에 도움이 된다. 국민의 혈세(血稅)라는 말은 있어도 세금폭탄이란 말은 국내외에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서영택 전 국세청장·건설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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