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소윤]‘태아 性감별’ 제도 보완을

  • 입력 2008년 8월 4일 03시 02분


우리나라 여성은 자신이 임신했음을 아는 순간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이 아이가 태어나면 나의 인생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가.” “아이의 양육과 직장생활을 둘 다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대부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아니면 “아이를 낳고 키우고 교육시키기 위한 여건을 마련할 수 있을까”라고 걱정할지 모른다.

딸 원하지 않아 낙태하는 걸까

혹시 “이 아이가 여자아이라면 어떻게 하지”라고 생각하는 여성이 아직까지 있을까.2005년 어느 조사에 의하면 국내에서 연간 34만여 건의 낙태가 이뤄졌다고 한다. 한 해에 태어나는 아이를 40만 명이라고 했을 때 약 85%에 해당하는 수치다.

낙태를 하는 여성의 60%가 기혼, 40%가 미혼이다. 이유를 보면 기혼자의 경우 더는 자녀를 원하지 않아서가 70%, 경제적인 어려움이 17% 등 양육에 대한 부담이 대부분이다. 미혼 여성은 93.7%가 혼인상의 문제로 낙태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6년 현재 한국의 성비는 딸 100명당 아들 107.4명으로 자연성비(딸 100명당 아들 106명)와 비슷하다. 이 성비가 태아 성감별 금지에 의해 달성된 통계라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여아를 원하지 않으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성감별을 하고 낙태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우리 사회는 단순히 여자아이를 원하지 않아서 낙태를 하는 사회는 아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헌법재판소가 의료법의 태아 성감별 금지조항에 대해 내린 헌법 불합치 결정은 매우 시의 적절한 판단이라 할 수 있다. 재판부는 “태아 성별 고지를 금지한 관련 조항은 성별을 이유로 하는 낙태를 방지해 성별 비례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법을 만든 정당성은 인정되지만 낙태가 불가능한 임신 후반기까지 전면 금지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밝혔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성감별이 바로 낙태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임신 후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 성감별을 가능하도록 만들어 성감별 결과가 낙태로 이어지지 않도록 제도적 보완을 해야 한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낙태로 생명을 잃어 가는 태아를 하나라도 살려내기 위해서 사회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우리 형법은 낙태를 엄격하게 금지한다. 모자보건법에서는 임신부의 우생학적 이유, 전염병, 임신부의 건강에 위해를 주는 경우, 강간 등의 사유로 28주 이내의 낙태를 허용한다. 사회경제적 사유로 낙태하려는 행위는 허용하지 않아서 대부분의 낙태가 법을 어기면서 행해진다. 청소년이나 미혼 여성은 낙태를 하면서 무허가 시술로 인해 건강을 해치는 경우도 있다.

임신 일정기간 후 허용했으면

미국이나 독일, 캐나다 등 선진국은 임신부의 사회경제적 사유를 폭넓게 인정하면서도 상담절차를 두는 등 낙태절차를 까다롭게 만들었다. 낙태를 할 수 있는 최소 주수(周數)도 10주에서 20주로 매우 조심스럽게 정했다. 또 직장에 다니는 여성이 아이를 키우는 일이 부담스럽지 않은 사회, 청소년 시기에 임신이 되어 아이를 낳더라도 엄마의 나머지 삶이 훼손되지 않고 정상적일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까운 생명이 아무런 저항도 못해 보고 죽어가는 중이다. 우리는 생명을 소중히 여긴다고 생각만 할 뿐, 낙태를 모른 척하며 살아가지는 않는가. 법과 현실의 간격을 줄이면서 낙태로 잃어가는 생명을 구하기 위한 행동을 하나하나 계획하고 실천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김소윤 연세대 의대 교수 의료법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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