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몽준]국가적 고난, 약이 되려면…

  • 입력 2008년 7월 16일 03시 01분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종교를 중심으로 한 논의가 다른 어떤 문제보다 예민하게 일어나고 있다. 특별히 기독교가 ‘도마’에 올랐다. 대통령이 특정 교회를 중심으로 사람을 쓴다고 비난하는 문제, 성직자가 촛불집회를 주도하는 현상에 대한 찬반, 불교 폄훼정책을 편다고 하는 불교계의 대정부 항의가 대표적이다. 모두 종교와 정치의 관계에 관한 일이다.

오늘의 이러한 현실은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세상이 과거와 무척 다르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정치다, 경제다, 문화다 하는 구분이 있었지만 요즘은 이 모든 영역이 서로 중첩돼 경계를 긋기 어렵다. 어떤 일이나 매우 복잡한 요인을 담게 되었다.

학계에서는 이원론적인 구조로 세상을 보고 택일적인 판단을 하는 태도를 가장 비이성적이고 반지성적이라고 말한다. 복잡한 현상을 단순하게 하는 작업이 학문의 사명이 아니라 오히려 복합성 자체의 의미를 파악하는 일이 학문의 진정한 과제라고 주장한다.

이런 태도에 대한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옳고 그른 점을 구분하지 않는, 비윤리적이거나 기회주의적이거나 회색분자가 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가치판단을 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문제는 자기의 선택만 절대적인 선이라고 하는 신념을 갖는 것이다. 우리는 바로 그 순간 나 아닌 다른 사람도 제각기 자신의 판단을 절대적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내 주장을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펼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서 나온다.

또 다른 측면은 세상이 이렇게 복합적이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이 하나의 정체성만이 아니라 중첩되고 다양한 정체성을 지니고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필자만 해도 대한민국 국민이고, 아내의 남편이고, 자식의 아버지이고, 국회의원이고, 체육인이고, 교회의 집사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사람은 동시에 정치적이고 경제적이며 문화적이다.

따라서 언제 어디서 내게 맞는 역할 기능을 해야 하는가를 늘 조심스럽게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회에서 집사의 역할을 해서는 안 되고, 교회에서 국회의원 노릇을 해도 안 된다. 우리는 때로 중첩된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발휘하면서도 스스로는 자신의 역할을 잘한다고 착각할 때가 많다. 이렇게 되면 삶의 질서가 엉망이 된다.

세상은 누구나 어떤 분야에나 간섭하고 관여하고 참여 주체가 될 수 있는 복합적인 사회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자기 정체성을 발휘할 적합한 일과 자리와 때를 분간해야 한다.

정치인이라면 국민을 위해, 기독교인이든 불교인이든 어떤 종교에 속한 사람이든, 그들을 위해 살아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종교인으로서도 역시 어떤 종교에 속한 사람이든 국민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필자 스스로도 정치와 종교 사이에서 이런 삶을 살기를 희망해 본다.

요즘은 분명히 국가적으로 고난의 시기다. 고난의 의미를 모르면 고난이 저주가 되지만 고난의 의미를 발견해 낸다면 고난은 곧 축복이라는 얘기가 있다. 경계가 모호한 세상에서, 또 여러 가지 정체성을 함께 갖고 살아가는 세상에서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하려 노력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분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몽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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