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서영아]‘北테러지원국 해제’로 난처해진 일본

  • 입력 2008년 6월 25일 02시 57분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움직임이 급물살을 타면서 일본 정부가 난처한 처지에 빠졌다. 그동안 일본은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의 전제조건으로 ‘납치 문제의 구체적 진전’을 요구해 왔다.

더구나 북한이 핵 신고를 하고 미국이 즉시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절차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진 26일은 교토(京都)에서 주요 8개국(G8) 외교장관 회의가 열리는 날이다. 일본으로서는 ‘최악의 타이밍’이 될지도 모른다.

일본은 일단 미국이 해제 절차에 들어가는 것을 용인할 듯하다. 24일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 외상은 “미국이 북한을 지정 해제하려 한다면 이를 납치 문제 해결에 박차를 가하는 카드로 활용했으면 한다”고 말해 상황에 따를 것임을 시사했다. 사실 일본으로서는 달리 방도가 없기도 하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북핵 문제 해결이라는 외교적 성과를 얻기에 급급해 납치 문제를 외면할지 모른다고 우려해 왔다.

막상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자 일본 내 반응은 혼란스럽다. 미국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한편으로 “일본은 북-일 국교 정상화 후의 경제협력 등을 미끼 삼아 독자적인 힘으로 대북 외교를 전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2주일 후 홋카이도(北海道) 도야코(洞爺湖)에서 열릴 G8 정상회의에서도 북한 문제가 의제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그 사이 핵 폐기를 위한 6자회담 과정이 진행돼 각국 정상이 이를 환영한다는 반응을 보일 경우 일본이 ‘납치 문제’를 어떻게 이슈화할 수 있을지도 난제다. 요미우리신문은 ‘미국 정부가 서둘러 지정 해제에 나서면 미일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사히신문은 미국 정부가 지정 해제를 미 의회에 통보하고 발효되기까지의 45일간에 주목하고 있다. 이 사이 일본이 어떤 형태로 6자회담과 북-일 관계를 진척시킬 것인지가 당면한 문제의 초점이라는 것이다.

일본 정부로서는 그동안 납치 문제를 내세워 온 체면이 걸려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제사회에서 ‘북핵 문제 해결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난만은 피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일본 정부가 앞으로 취할 행보가 주목된다.

나아가 이 같은 상황이 빚어진 데는 북한에 대한 일본의 뿌리 깊은 불신감이 있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할 듯하다. 북한이 과연 이런 국제사회의 불신을 해소할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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