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칼럼]촛불 이후

  • 입력 2008년 6월 23일 20시 07분


쇠고기 파동은 사회과학도들에게 두고두고 좋은 연구 주제가 될 것 같다. 그 안에 우리 사회가 직면한 거의 모든 문제가 녹아있다. 정치 경제 사회학은 물론 언론이나 사회심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도 가히 보고(寶庫)다. 누구든 올가을엔 좋은 논문 몇 편 써줬으면 한다. 혼돈과 격정의 여름을 보내고 숙성된 가을 햇볕 아래서 찬찬히 읽고 싶다.

논문을 쓸 역량이 내게는 없어 개론(槪論) 삼아 몇 마디 한다면 쇠고기 파동은 세계화 정보화 민주화라는 세 개의 거대한 파도가 낳은 불안(不安)의 자식이다. 세계화가 불안을 낳고, 불안이 정보화를 통해 증폭되고, 민주화가 이를 촛불에 실어 거리로 내밀었기 때문이다.

시위 현장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다. 광우병 불안 뒤로 스멀거리는 더 큰 불안의 그림자들을. 10대 아이들은 교육자율화가 그들을 무한 입시경쟁으로 내몰까 봐 불안해하고, 부모들은 구조조정으로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한다. 비정규직 백수세대는 자신들의 인생이 이대로 끝나버리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한다. 한 지식인의 전망을 빌리면 “21세기형 세계화 속에서는 기업과 기업, 개인과 개인 간의 경쟁이 종래의 ‘생태적 경쟁’에서 ‘살육적 경쟁’으로 치열하게 펼쳐질 것”이라고 한다. 이러니 누군들 불안하지 않겠는가.

불안이 조장되기도 한다. 촛불시위가 꾼들에 의해 ‘정권 타도’ ‘미친 교육’ 시위로 변질된 데서도 드러나듯이 불안은 대중선동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흔히 “세계화가 빈부격차를 심화시킨다”고 하지만 “더 큰 성장과 발전의 기회를 줌으로써 오히려 완화시킨다”는 주장도 많다. 그런데도 다중(多衆)은 ‘세계화’ 하면 양극화와 복지 축소부터 떠올린다.

세계화 정보화 민주화 앞에서

불안을 확대 재생산하는 것은 정보화다.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세계 1위 국가답게 불안은 순식간에 확산된다. 그냥 퍼지는 게 아니다. 클릭 한 번에 새로운 사실, 또는 왜곡된 정보가 추가되면서 세력화한다. TV 오락프로에서 방음(防音) 귀마개를 쓰고 앞사람이 한 말을 뒷사람에게 전달하는 것과 같다. 첫 번째 청자(聽者)가 들었던 말이 마지막 청자까지 정확하게 전달되는 경우가 거의 없듯이, 무수한 클릭과 댓글 끝에 듣게 되는 말도 사실과 다르기 일쑤다. 그러나 불안을 정치세력화하는 과정에선 그런 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세력화된 불안’을 기다리는 것은 이제 민주화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외치며 그들은 거리로 나선다. 지난 20년 동안 민주화는 웬만큼 됐기에 거칠 것이 없다. 대의(代議)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본질이라고? 그것은 지리적, 공간적 제약으로 직접민주주의를 할 수 없었을 때의 얘기지, 지금은 다르지 않은가. 그들은 광장에서 대의민주주의를 조롱하고 불안과 불만에 대한 자기구제(自己救濟)를 꿈꾼다.

이렇게 타오른 촛불이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이제 곧 쇠고기 파동도 가라앉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잉태하고 낳았던 세계화 정보화 민주화는 한층 견고해진 상태로 남을 것이다. 그리하여 무엇이든 이 세 개의 파도 속에 떨어지면 쇠고기와 같은 행로를 밟게 될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보자. 정부와 여당이 비준을 서두르는 순간 세계화는 불안을 낳고, 정보화는 불안을 키우고, 민주화는 이를 거리로 내몰 것이다.

어디 이뿐일까. 눈앞의 거의 모든 현안이 이런 위험에 노출돼 있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불행한 정부다. 세계 어느 정부도 이처럼 거대한 삼각파도 앞에선 뜻을 제대로 펴기 어렵다. 해법은 없는가. 불안이 배태, 증폭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선 급하다.

시민사회의 민주화가 더 급하다

그러려면 좀 더 본질적인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세계화의 실체를 우리는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는가. 부정확한 정보와 지식에 의해 세계화에 대한 편견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가. 인터넷에 정치의 어떤 부분을 얼마만큼 내줄 것인가. ‘보편적 접근성’이 보장되지 않는 전자민주주의는 또 하나의 ‘원형감옥’임을 아는가. 전자민주주의가 국민의 ‘대의민주주의 피로감’을 씻어줄 것인가. 이 민주과잉시대에 정작 화급한 것은 정권의 민주화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민주화임을 아는가.

우리는 적어도 이런 질문에 자신 있게 답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촛불을 끄기 위해서가 아니라 뛰어넘기 위해서 필요하다. ‘촛불 이후’에 정권과 나라의 성패가 달렸다.

이재호 논설실장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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