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권순택]10代예찬론의 함정

  • 입력 2008년 5월 18일 20시 02분


뜬금없이 10대 예찬론이 난무한다. 한 386 출신 경제전문가는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 나온 10대 중고생들이야말로 “한국의 희망이자 구원”이라고 치켜세웠다. 좌파 진영의 대표적 지식인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10대 청소년들이 시위에 많이 나온 것은 뜻 깊은 일”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에 따르면 “10대 청소년들이야말로 이 나라에서 가장 억압받고 학대받는 계층”이란다. “똑똑한 아이들이 그동안 멱에 차오른 분노를 광우병에 대한 공포심과 정부 협상에 분노하는 형식으로 표출한 것”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아예 촛불집회에 가라고 독려하는 것이 솔직하지 않을까.

요즘 10대가 별나긴 하다. 인터넷 역사와 함께 성장한 이들은 컴퓨터와 디지털 기기 활용 능력에서 기성세대를 압도한다. ‘2.0세대’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디지털 세대다. 표현력도 좋고 별로 주눅도 들지 않고 당당하다. 그러나 정치적 의도에 의해 인터넷 공간이 쉽게 조작될 수도 있다는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다.

촛불을 들었다고 해서 그들을 하나의 코드로 엮어보려는 시도 자체가 난센스다. 웃자란 10대도 있고 좋아하는 연예인 때문에 나갔거나, 월드컵 때 외치던 ‘대∼한민국’ 분위기를 기대하고 간 학생도 있다. 학교급식 걱정이나 교육정책에 대한 불만 때문에 촛불을 든 아이도 있다. 교사나 부모의 영향을 받은 학생은 왜 없겠나. 집회가 끝난 뒤 쓰레기를 치우고 빗자루로 바닥을 쓰는 착한 학생들도 봤다.

수필가 민태원은 “청춘의 피가 뜨거운지라, 인간의 동산에는 사람의 풀이 돋고, 이상의 꽃이 피고, 희망의 놀이 뜨고, 열락의 새가 운다”고 청춘을 예찬했다. 그 빛나는 청춘들이 어떤 이유에서라도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었다면 어른들은 책임의식과 부끄러움을 느껴야 정상이다. 그들이 촛불을 들었다고 미래의 희망을 봤다니, 세상을 뒤집어 놓을 불씨라도 발견했다는 건가.

역사적으로 10대를 정치에 동원한 결과는 참혹했다. 독재자 히틀러는 10대 청소년들로 나치의 청소년 조직 유겐트를 만들어 시위와 선동에 악용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1966년부터 10년 동안 계속된 문화대혁명이란 광란에 10대 홍위병을 동원했다. 캄보디아 폴 포트 공산정권은 1970년대 말 10대의 손에 총을 쥐여줘 동족 200만 명을 학살하는 데 이용했다. 모두 역사상 최악의 사건들이다.

10대 청소년이라고 해서 기본권에 해당하는 표현이나 집회의 자유를 누리지 말란 법은 없다. 하지만 정치활동에는 제한이 있다. 민주주의냐 독재냐를 가리지 않고 모든 나라는 정치참여의 상징인 투표권에 연령 제한을 둔다. 21세부터 시작된 투표 연령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18세까지 내려갔다. 우리나라는 지난 대선 때 20세에서 19세로 낮췄다. 10대 중고교생들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고 정당 가입도 허용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정치적 판단 능력과 책임감 부족 때문이다.

광우병 괴담이 모두 사실이라도 10대를 대통령 탄핵 같은 정치구호가 난무하는 시위 현장에 끌어 모으고 싶어 안달하는 것은 어른들이 할 일이 아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어른이고 정치인이라면 ‘우리에게 맡기고 너희들은 학교로 돌아가라’며 말려야 옳다. 10대는 사랑과 이해, 관심과 배려, 보호와 육성의 대상이지 정치적 이용과 선동의 대상일 순 없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