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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2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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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에는 진행상황을 점검하느라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때 예산 절감 문제가 제기되자 음악가 몇이 자발적으로 출연 개런티 인하를 제안했다. 이런저런 성가신 일들을 앞장서 챙기고 있는 어떤 대학교수는 매년 이맘때가 되면 무엇이 본업이고 무엇이 부업인지 모르겠다며 즐거운 비명이다.
이쯤 되면 자그마한 동네 음악회나 교내 음악회 정도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것은 수억 원대의 예산으로 열흘 이상에 걸쳐 시민 모두를 대상으로 열리는 클래식음악 대장정이다.
그런데 이 음악축제의 주관단체는 유명 공연기획사나 굴지의 언론사가 아니다. 그것을 기획하고 책임지는 쪽은 세계 정상급 음악가 몇 명과 그들을 좋아하는 평범한 음악애호가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음악회는 지금까지 신통방통 잘 굴러가고 있다. 매회 거의 전석 매진을 기록했을 뿐 아니라 중국 베이징 올림픽을 맞이하여 금년에는 베이징 공연까지 계획할 정도이고 내년부터는 국내 지방도시 나들이도 구상 중이다. 물론 믿고 기댈 언덕이 하나쯤은 있었다.
문화 생산자와 소비자가 결합
최근 ‘창의 문화도시’로 거듭나고자 노력하는 서울시의 재정적 후원은 행사의 목돈으로 매번 값지게 쓰이고 있다. 더욱이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 원칙은 문화행정의 모범 사례다. 여기에 클래식음악을 사랑하는 기업이나 기관들의 자발적 협찬 또한 귀하고 장하다.
하지만 그 음악회를 이끌어가는 더욱 유별난 힘은 토플러가 말한 프로슈머(prosumer)시대가 문화영역에 발현한 점에 있다. 이를테면 전문가(professional) 혹은 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가 서로 결합한 것이다.
가령 참여 예술가들은 주최자로서 스스로 문화를 생산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즐기고 누리는 소비자의 역할을 공연 기간 내내 자청한다. 또한 그들의 도반(道伴) 혹은 프렌즈는 문화의 수요자나 수혜자에 머물기보다 그것의 창조 및 공급과정에 동참함으로써 보통 사람의 문화주권 시대를 적극 실천한다. 그 밖에도 수많은 자원봉사자의 헌신적 노력을 결코 빠뜨릴 수 없다.
그 결과 이제 우리는 매년 봄마다 전문공연장은 물론이고 지역문화관, 고궁, 성당 또는 거리에서 세계 톱클래스 연주를 부담 없이 직접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평소 클래식음악 공연 티켓 가격으로 말하자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대한민국 서울에서 말이다.
연유를 묻자면 이는 실내악의 고유 특성과 깊이 관련되어 있지 않나 싶다. 관현악이나 오페라가 익명의 청중을 대상으로 스펙터클을 제공하는 외향적 음악이라면 실내악은 연주자와 관객이 내밀한 감동을 가까이서 소통하는 일체형 음악이다.
또한 실내악은 연주자들끼리 서로 음악을 배우고 즐기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강동석이 바이올린은 갈라미안에게 배웠지만 음악은 실내악에서 배웠다고 말한 것도 이런 취지다. 이처럼 예술적 기량과 인격적 유대를 함께 추구하는 실내악 정신이야말로 올해로 세 번째 맞는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의 최대 특징이자 자산일 것이다.
강동석 예술감독이 꿈꾸는 것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능가하는 세계 최고의 도심형 실내악축제다. 사실 서울은 전 세계에서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가를 가장 많이 배출한 도시 가운데 하나이면서도 그 위상에 값하는 클래식 음악무대 하나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늘 있었다.
실내악축제 시민과 소통 성공
게다가 아직도 우리나라는 실내악 불모지로 남아 있다는 것이 대체적 평가다. 이런 점에서 서울의 봄 실내악축제가 불과 몇 년 만에 국제적 명성과 대중적 인기를 함께 확보한 것은 문화도시 서울의 면목을 크게 세운 일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문화권력이나 문화산업, 문화운동 등 말하자면 세속적 동기의 산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차제에 우리는 진정한 문화시대로의 진입을 예감하기도 한다.
문화의 본질은 그걸 통해 힘쓰고 뽐내고 줄 서고 돈 버는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를 즐김과 나눔의 대상으로 알고 실천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진정한 문화거장과 문화시민만이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
전상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교수·사회학 sangi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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