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현대車-삼성전자는 30년 후 준비하나”

  • 입력 2008년 4월 12일 02시 50분


마케팅 전략의 세계적 석학인 S.P.라즈 미국 시러큐스대 교수는 전략 수립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과 같다며 한국 기업들이 긴 안목을 가지고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강병기 기자
마케팅 전략의 세계적 석학인 S.P.라즈 미국 시러큐스대 교수는 전략 수립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과 같다며 한국 기업들이 긴 안목을 가지고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강병기 기자
S.P.라즈 교수(오른쪽)와 김상훈 서울대 교수가 한국 기업들의 바람직한 전략 수립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강병기 기자
S.P.라즈 교수(오른쪽)와 김상훈 서울대 교수가 한국 기업들의 바람직한 전략 수립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강병기 기자
“도요타는 오늘을 위해 30년을 준비”

서울대 MBA 스쿨-동아일보 석학 대담

《동아일보는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MBA스쿨)과 함께 세계 최고의 경영 석학 21명과 릴레이 인터뷰 및 대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마케팅 전략의 최고 권위자인 S.P.라즈 시러큐스대 교수와 서울대 김상훈(마케팅 전공) 교수가 대담을 했습니다. 서울대는 글로벌 MBA 과정을 육성하기 위해 경영학 분야별로 최고의 연구 성과를 낸 외국인 교수 21명을 7월 초까지 순차적으로 초청합니다. 동아일보는 인터뷰나 대담을 통해 서울대에서 강의하는 석학들의 첨단 경영 기법과 이론, 통찰 등을 소개합니다. 또 동아일보가 발행하는 한국 최초의 고품격 경영매거진 동아비즈니스리뷰(DBR)를 통해 석학들의 서울대 강연 내용을 요약하여 전해 드립니다. 서울대 MBA스쿨 및 동아일보와 함께 천재 경영이론가들이 펼치는 지식의 향연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김상훈 교수 수십 년간 마케팅을 연구해왔고 이 분야의 석학으로 평가받고 있다. 좋은 마케팅 전략이 갖춰야 할 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S.P.라즈 교수 우선 장기적 관점에서 긴 안목을 가져야 한다. 또 기업 환경의 변화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마케팅에서는 이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 마케팅 전략은 기업에 장기적 이익을 가져다주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오늘 바로 해야 할 일이 있고, 단기간 혹은 장기간에 걸쳐 해야 할 일이 있다. 이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김 이런 좋은 마케팅 전략을 구사한 대표적인 기업의 사례를 든다면….

▶라즈 도요타자동차다. 특히 긴 안목을 가졌다는 측면에서 도요타만큼 뛰어난 기업은 없다. 도요타가 미국 진출 후 지금의 자리에 올라서기까지 30년이 걸렸다. 전략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도요타는 1960, 70년대부터 꾸준히 발전을 거듭한 끝에 세계 최고 자동차업체로 거듭났다. 도요타의 품질, 서비스, 디자인 향상은 꾸준히 이뤄졌다. 도요타의 신제품은 항상 과거 제품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났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은 도요타의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이번에는 무엇을 개선했을까’라고 기대했다.

도요타의 통찰력도 빼놓을 수 없다. 15년 전 대부분 자동차회사들은 하이브리드카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도요타는 일찍부터 미래를 준비했다. 도요타는 특히 ‘하이브리드카를 구입한 사람은 윤리적이고 친환경적’이란 인식을 갖게 만들었다. 게다가 소비자에게 상당한 거부감을 야기하는 전기 충전의 불편함도 해결했다. 소비자가 과거 운전습관을 바꾸지 않으면서 하이브리드카를 편하게 쓸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김 현대차가 도요타의 장기적 발전 모델을 도입한다면 도요타와 같은 성공을 이뤄낼 수 있을까.

▶라즈 현대차는 미국 진출 초기 스톤헨지(영국의 거석 유적지) 주변으로 질주하는 다른 차들은 다 망가지는데 현대차만 멀쩡하게 달린다는 내용의 광고를 내보냈다. 당시 미국에서 현대차의 이미지는 전형적인 저품질 저가격 자동차였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그 광고에 냉소했다. 현대차는 미국 진출 후 15년 만에 렉서스와 경쟁할 제네시스를 미국시장에 내놓는다. 15년이란 시간, 현대차의 라인업이 여전히 저가차 위주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빠른 것 아니냐는 우려도 든다. 그러나 기업 환경 변화 속도가 빨라진 데다 중국 업체들의 추격까지 감안하면 현대차는 도요타가 현 위치에 오르는 데 걸렸던 30년보다 더 짧은 시간에 도요타 식의 점진적이고 꾸준한 개선을 이뤄내야 한다.

▷김 동의한다. 도요타는 주력 모델을 저가에서 고가 제품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과도기를 가졌다. 하지만 현대차는 그렇지 못했다.

▶라즈 자랄 때 현대차를 저가차로 인식한 사람들은 현대차에 대한 이미지를 쉽게 바꾸지 못한다. 마케팅은 사람의 ‘인식(perception)’을 바꾸는 행위다. 인식을 바꾸는 데는 당연히 시간이 필요하다.

▷김 반도체, 전자, 조선, 자동차, 통신은 한국의 5대 간판 산업이다. 이 중 어떤 산업이 미래에 가장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보는가. 한국 기업에 해주고 싶은 조언은 무엇인가.

▶라즈 그 대답에 앞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한국 기업들이 지식산업, 콘텐츠산업과 같은 무형자산(intangible asset)에 얼마나 투자할 의향이 있고, 얼마나 개방적 자세를 갖췄느냐 하는 것이다. 인도를 보자. 인도가 정보기술(IT) 강국이 된 것은 단순히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인도는 상당 기간 폐쇄 정책을 추구하다 문제점을 깨닫고 외부에 문호를 개방했다. 문을 열지 않으면 외부 아이디어를 수혈할 수 없고, 혁신을 이룰 수 없다.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6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삼성에도 현대와 비슷한 조언을 해주고 싶다. 인도에 가면 누구나 노키아 휴대전화를 쓴다. 가난하고 신분이 낮아 TV를 보유하지 못한 사람들조차 노키아 휴대전화는 갖고 있다. 삼성은 오랫동안 프리미엄 전략을 취해왔다. 길게 생각하고 단계별 진전을 이루라는 충고는 저가품에서 고가품으로 올라갈 때뿐 아니라 고가품에서 저가품으로 내려올 때에도 해당된다. 이머징 마켓의 저가 휴대전화 시장이 급성장한다고 해서 삼성이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갑자기 저가 시장에 뛰어들면 안 된다. 저가 휴대전화 시장에서 노키아를 이기려면 적어도 10년은 내다보고 차근차근 추격해야 한다.

▷김 많은 한국 기업은 거세게 추격하는 중국 업체와 기술력에서 앞선 일본 기업 사이에 끼여 옴짝달싹 못하는 호두까기(넛크래커) 속의 호두 신세라는 분석이 있다. 이 상황에서 벗어날 돌파구는 없는가.

▶라즈 한국은 이머징 마켓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머징 마켓에 진출하려는 미국이나 유럽 기업들에게 한국 기업들이 각종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 또 중국과 일본 사이의 중간시장을 너무 빨리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 인도에서는 구매력이 떨어지는 계층이 많지만 그렇다고 아주 싸구려 제품만 통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서구 기업들의 고가 제품을 사기도 어렵다. 일정 수준의 품질을 유지하면서 합리적 가격대의 제품을 출시한다면 한국 기업들은 얼마든지 선전할 수 있다.

▷김 당신은 20년 전 A K 굽타 교수 등과 함께 연구개발(R&D)과 마케팅 부서의 상호 연관성이 중요하다는 논문을 썼다. 동료 교수 중 한 명은 이 논문에 감동받아 당신이 재직하고 있는 시러큐스대에 유학 갔을 정도였다. 이 논문 주제는 여전히 유효한가?

▶라즈 물론이다. 오히려 그 당시보다 지금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R&D와 마케팅은 멀리 떨어져서 서로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두 부문이 많이 다르고 일하는 사람들의 성향 또한 판이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두 부문은 반드시 연관성을 가져야 한다. R&D 부문은 기술에만, 마케팅 부문은 소비자에게만 집착한다. 한 사람이 두 가지 일을 할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혁신 아이디어가 나오기 어렵다. 두 부문이 서로 영향을 미쳐야 한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라즈 교수는…

S.P.라즈 교수는 인도 최고의 대학 인도공대(IIT·Indian Institute of Technology·첸나이)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고 미국 카네기멜런대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78년 시러큐스대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한 뒤 노스웨스턴대 켈로그 MBA 스쿨, 코넬대 교수를 역임했다. 마케팅 분야에서 최고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리틀 어워드(Little Award), 리먼 어워드(Lehmann Award), 배스 어워드(Bass Award) 등을 휩쓰는 등 탁월한 연구 성과를 인정받은 석학이다. 주 연구 분야는 마케팅전략, 소비자 구매행동 연구, 신제품 개발과 인터넷 마케팅 등이다.

김상훈 교수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KAIST와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스탠퍼드대에서 마케팅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저서로는 ‘하이테크 마케팅’ 등이 있다.

국내 최초의 고품격 경영매거진 ‘동아비즈니스리뷰(DBR)’ 7호(4월 15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DBR 웹사이트 www.dongabiz.com, 개인 구독 문의 02-721-7800, 단체 구독 문의 02-2020-0685

Design Touch/기발한 인테리어, 신나는 사무실

매일 똑같은 책상에 앉아 똑같은 자세로 일하는 직장인들에게 혁신 아이디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앞서가는 기업들은 사무실 디자인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직원들의 업무 효율과 창의성을 높인다. 파티션 대신 물결무늬 나무판을 사용하는 일본 디자인 회사 넨도, 놀이공간과 욕조를 갖춘 취리히 구글 사무실 등이 대표적 사례다.

부즈앨런 보고서/오래된 브랜드에 새로운 활력을

오래된 브랜드를 계속 살려 둬야 할까, 아니면 버려야 할까. 부즈앨런 해밀턴이 이런 어려운 결정을 내릴 때 유용한 방법론인 ‘브랜드 생명력 평가(BVA·Brand Vitality Assessment)’를 소개한다.

Knowledge@Wharton/인쇄매체는 디지털보다 강하다

많은 마케팅 담당자가 e메일, 블로그, 메신저 등 최신 유행의 디지털 매체보다 구식 인쇄물을 더 선호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스팸메일 등 상업적 요소가 강한 디지털 매체와 달리 종이는 관계 지향적 요소가 강한 매체이기 때문이다. 특히 고객의 개인 기록에 맞춘 차별화한 우편물을 발송하면 상품 구매 확률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메디케어 이노베이션/의료 간접체험 서비스

의료 분야에서 체험 마케팅이 부상하고 있다. 실적 부진으로 고민하던 병원 가운데 1회 체험 진료나 간접 체험 서비스를 도입해 톡톡히 효과를 보는 사례가 많다. 내시경 진료를 꺼리는 환자들에게 내시경 장비와 진료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시연하면 거부감이 줄어들며, 정기적으로 내시경 검사를 받는 환자도 크게 늘어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