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북한 엉터리 통계’ 믿고 對北정책 세울 수 없다

  • 입력 2008년 3월 7일 22시 49분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정부의 북한 경제력 평가가 잘못됐다며 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 전 장관은 북의 경제력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처럼 남한의 35분의 1이 아니라 100분의 1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은행이 북의 국민총소득(GNI)을 추정하면서 북의 생산량 데이터 또는 추정치에 남한의 가격과 부가가치율을 적용해 계산했기 때문에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졌다고 설명했다.

대북정책 수립의 기본 자료인 한은의 통계가 잘못됐다면 심각한 문제다. 엉터리 북한 경제 통계를 근거로 한 정부의 대북(對北) 정책은 현실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북의 1인당 소득이 1000달러인가, 아니면 400달러가 채 안 되는가에 따라 북 주민을 보는 국민의 시각도 달라진다. 새 정부의 ‘비핵개방3000’(북이 핵을 포기하면 10년 뒤 북 주민의 소득을 3000달러까지 늘려주겠다는 공약)도 북 경제의 실상이 알려진 것과 크게 다르다면 수정해야 한다.

북한이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아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파악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1만 명이 넘는 국내 탈북자를 활용하고, 정부가 수집한 각종 정보를 종합하면 지금보다 훨씬 정확한 수치를 구할 수 있다. 관련 부처들끼리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에 관한 통계가 정확하면 대북 지원을 둘러싼 갈등도 완화할 수 있다. 1조2000억 원(12억6000만 달러)으로 늘어난 남북협력기금만 해도 규모의 적절성을 판단하기가 쉬워진다. 북한 GNI가 256억 달러(한은 통계)인 경우와 84억∼89억 달러(이 전 장관 주장)인 경우 지원은 달라져야 한다. 북한이 생각보다 가난하다면 인도적 지원을 늘리는 쪽으로 검토할 수 있다.

통계작업이나 발표가 정치적으로 영향을 받아서도 안 된다. 지난해 대선 직전 한국국방연구원(KIDA)은 북의 국방력이 알려진 것보다 강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했으나 참여정부는 발표를 미루게 했다. 포용정책 추진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해서일 것이다. 새 정부는 어떤 경우에도 북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해 있는 그대로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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