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하태원]오바마 -힐러리의 NAFTA 문제 말바꾸기

  • 입력 2008년 3월 7일 02시 46분


4일 ‘제2차 슈퍼화요일’ 경선이 치러진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의 최대 히스패닉 육류시장 ‘라 모렐리아나’. 이곳에 모인 히스패닉(중남미계) 이민자들에게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논란은 화제였다.

1994년 발효된 NAFTA의 내용이 바뀌거나 미국이 탈퇴할 경우 자신들의 생활도 당장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

상점을 운영하는 멕시코 이민자인 에드워드 아레발로(68) 씨는 “협정 발효 후 멕시코에서 텍사스로 이주한 히스패닉 인구가 계속 늘어나 장사가 잘되는 편”이라고 말했다. 시장을 보러 나온 신시아 산체스(39·여) 씨도 “더 많은 히스패닉 인구에게 미국 정착의 기회를 줬다는 점에서 NAFTA는 은총”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동시에 경선이 치러진 오하이오 주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많은 공장이 멕시코로 이전하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은 이곳의 백인 블루칼라 계층에 NAFTA는 ‘재앙’이었다. CNN의 출구조사 결과에서도 오하이오 주민들의 80%는 NAFTA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처럼 상반된 여론 때문인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버락 오바마 후보는 오하이오 주에서는 NAFTA를 맹공격했지만 텍사스 주에서는 “NAFTA의 공과(功過)에 대한 논란이 있는 만큼 면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발언 수위를 낮췄다.

오스틴 주 의회 의사당에서 만난 에스더 로드리게스(47·여) 씨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재협상에 나서겠다’던 오바마 후보가 캐나다 정부에는 ‘내 발언은 선거용’이라고 해명한 것은 표를 얻기 위한 말 바꾸기의 전형”이라고 꼬집었다.

정치인들이 상황에 따라 태도를 바꾸는 것이 비단 미국 대선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닐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중 체결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국회 비준을 매듭짓지 않은 채 야인으로 돌아갔고, 새로 집권한 이명박 정부 인사들도 4월 총선에 미칠 영향을 고려한 듯 말을 아끼고 있다.

정치인이 대중의 뜻을 존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 간 조약에 준하는 무역협정을 일방적으로 깰 수 있다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들이 ‘공약’하는 것은 그들이 그토록 비판했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일방주의를 답습하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태원 워싱턴 특파원 triplet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