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빗장 푼 리비아, IT 조선 등 한국 기업에도 기회의 땅

  • 입력 2008년 2월 25일 02시 50분


토머스 크레이그 모니터그룹 공동창업자 겸 부회장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우등으로 졸업한 후 30여 년간 컨설팅 업계에서 일해 왔다. 100여 개 산업에서 300여 건의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특히 아시아와 중동지역 사정에 밝다. 전영한  기자
토머스 크레이그 모니터그룹 공동창업자 겸 부회장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우등으로 졸업한 후 30여 년간 컨설팅 업계에서 일해 왔다. 100여 개 산업에서 300여 건의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특히 아시아와 중동지역 사정에 밝다. 전영한 기자
리비아 국가컨설팅 크레이그 모니터그룹 부회장

《사하라 사막의 리비아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을까? 모래폭풍, 대수로, 테러리스트, 미국에 맞서 레이건 전 대통령으로부터 ‘미친 개(mad dog)’로까지 불리던 무아마르 카다피 최고지도자 정도다. 하지만 여객기 폭파와 은밀한 핵 개발 등으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됐던 리비아가 엄청난 속도로 변하고 있다. 리비아는 이제 석유 이외에 중개무역과 관광, 농업, 건축 등 다양한 산업이 함께 발전하는 북아프리카의 파라다이스를 꿈꾸고 있다. 리비아는 2003년 대량살상무기(WMD) 포기를 선언하고 서방 세계와의 대결도 끝냈다. 그만큼 한국 기업에도 과거에 비해 훨씬 많은 기회가 있다는 얘기다. 더욱 놀라운 점은 사회주의자임을 자처하던 카다피 정부가 경제개혁 파트너로 ‘자본주의의 첨병’인 경영컨설팅 회사를 선택했다는 것. 그 파트너는 경영학계의 석학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가 설립한 모니터그룹이다. 모니터그룹은 아일랜드와 네팔, 부탄 등 세계 여러 나라의 국가 개혁을 컨설팅해 왔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는 20일 모니터그룹의 공동 창업자이며, 리비아 개발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토머스 크레이그 부회장을 만나 리비아 경제개혁의 의미와 이면의 사정은 물론 리비아 사례가 북한에 주는 시사점을 들어봤다. 크레이그 부회장은 모니터그룹의 아시아 및 중동 사업을 독려하기 위해 이 지역 국가를 방문 중이다. 한국은 그중 첫 번째 방문국이다.》

○ 석유 풍부한 리비아, 근면성은 떨어져

크레이그 부회장은 컨설턴트라는 직업과 외교관이었던 아버지 때문에 세계 수십 개 나라를 방문했다. 지난 여름에는 북한도 다녀왔다. 리비아는 지금의 북한처럼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으며, 미국으로부터 ‘불량 국가’로 불리기도 했다. 그가 북한과 리비아를 어떻게 비교할지 궁금해졌다. 특히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마저 조만간 권좌를 내놓을 것으로 알려져 마지막 남은 철권통치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 대한 분석이 기다려졌다.

―북한과 리비아의 차이는 무엇인가. 리비아의 사례는 북한에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을까.

“북한과 리비아는 비슷한 사회 체제와 과거를 가졌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리비아는 석유가 풍부하고, 북한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요. 리비아는 외환보유액이 100억 달러나 돼 경제가 붕괴할 걱정이 없습니다. 하지만 국민의 근면성이나 직업윤리는 약한 편입니다.

지난해 북한에 갔을 때 홍수 복구 현장을 봤는데, 사람들이 정말 열심히 일하더군요. 협동도 잘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적절한 교육만 이뤄진다면 북한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훨씬 더 잘 받아들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한은 리비아의 사례를 보고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 지도부는 개혁 개방과 같은 ‘피할 수 없는 결과’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 세계화의 흐름에 어떻게 참여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카다피 최고지도자는 개혁이라는 피할 수 없는 결과를 기회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대목이지요. 물론 김정일 위원장에게도요. 쿠바 통치자 카스트로 의장마저 물러나면 이제 북한의 리더십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김 위원장이 어떻게 매끄럽게 국제공동체에 편입하느냐, 이것이 화두이지요.”

○ 석유가 리비아 GDP의 60%… 고용은 3%뿐

본론으로 들어가 리비아 얘기를 시작했다. 리비아는 석유와 천연가스가 꽤 풍부한 나라다. 그런데도 부지런하게 경제개혁을 하고 있다.

―리비아의 경제 상황은 어떠한가. 무엇이 가장 큰 문제인가.

“리비아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부국(poorest rich country)’입니다. 석유로 벌어들이는 돈이 막대함에도, 오랜 사회주의 체제와 서방의 경제 제재로 인프라와 석유 이외의 산업 환경이 매우 열악합니다. 임금 수준이 북아프리카에서도 바닥 수준일 정도입니다.”

―석유로 돈을 많이 벌고 있지 않나.

“석유가 오히려 다른 산업의 발달을 저해해 문제입니다. 석유산업은 국내총생산(GDP)의 60%를 차지하지만, 취업인구의 3%만을 고용합니다. GDP의 40%를 차지한 다른 산업이 취업인구의 97%를 책임지고 있는 거죠. 게다가 석유 이외의 부문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아직도 제한이 있습니다.”

―리비아 정부의 개혁 목표는 무엇인가.

“전체적인 목표는 ‘자마히리야(직접인민정치체제)’ 같은 리비아의 독특한 특징을 지키면서 국제경제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것입니다. 경제개혁은 리비아 혁명 50주년이 되는 2019년까지 완료할 계획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북아프리카의 정보통신 중심으로 도약 △에너지 산업 재정비 △농업, 관광, 건축, 중개무역 등 석유 이외의 산업 클러스터 육성 등이 목표입니다. 현재 20%에 불과한 실질고용률도 90%까지 끌어올리려고 합니다.”

―개혁과 관련한 모니터그룹의 역할은 무엇인가.

“우리는 2005년 국가경제전략을 수립할 때부터 기초연구와 정책 제안을 맡아 왔습니다. 금융 조세 투자 등 국가정책과 관련해 심도 있는 조언을 하고 있지요. 개혁을 주도하는 경제개발위원회도 모니터그룹의 제안으로 생겼습니다. 이 위원회는 카다피의 아들인 사이프 알 이슬람이 이끌고 있습니다. 비즈니스 마인드 도입을 위해 미니 경영학석사(MBA) 과정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25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죠. 졸업생들이 시작한 사업체가 이미 200개나 됩니다.”

―개혁에 참가하면서 겪는 어려움도 많지 않나.

“크게 두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첫째, 북한과 마찬가지로 쓸 만한 데이터가 부족합니다.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어요. 리비아 사람들이 자료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몇 해 전 국제축구연맹(FIFA)이 리비아 국민의 건강기록이 보관돼 있는 건물에 입주했어요. 그런데 FIFA의 사무공간을 만들기 위해 리비아 공무원들이 14년 치의 기록을 내다버렸습니다.

두 번째로는 강한 관료주의와 개혁에 대한 반감을 꼽을 수 있습니다. 리비아의 공직사회에는 실제로 하는 일은 없으면서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꽤 있죠. 이들을 비롯해 정부 기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개혁에 반대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컨설턴트들과의 인터뷰를 일부러 취소하는 등 협력을 거부합니다.”

○ 카다피는 지적이고 소박한 인상 줘

리비아 하면 카다피란 인물이 떠오른다. 그는 한국을 비롯한 서방 사회에 상당히 부정적인 모습으로 알려져 있다.

―카다피 최고지도자를 만나본 적이 있나. 그는 어떤 사람인가.

“‘카다피 대령’과 개인적으로 3, 4시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는 매우 지적인 사람이었으며, 거짓이 아닌 진짜 소박한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을 줬습니다. 접견을 한 장소도 그의 텐트였습니다. 밖에는 모닥불이 타고 있었지요. 카다피 지도자는 수수한 옷을 입고 낙타 젖을 마시는 검소한 모습을 보여 줬습니다.

○ 한 학번 선배가 평생 가는 한국의 서열의식은 문제

크레이그 부회장은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아시아지역 책임자로 일했다. 당시 한국지사를 설립하기 위해 잠시 서울에 머물기도 했다. 그는 한국 기업과 사람들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았다.

―리비아 경제개혁에 한국 기업도 참가할 수 있을까.

“분명히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한국 기업은 정보기술(IT)과 건설, 무역, 조선 등에 강점이 있습니다. 모두 리비아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지요. 과거의 협력관계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다만 아직도 사업상의 불확실성이 많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경영 컨설턴트로서 한국 사회와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조언을 한다면….

“사람들이 좀 더 젊은 나이에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유교적 가치와 서열이 지배적입니다. 97학번이 (한 살 차이밖에 안 나는) 98학번에게 평생 선배노릇을 하는 것은 우습지 않은가요? 하버드대를 중퇴했지만 세계 최고기업을 만든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같은 사람이 나오게 해야 합니다.”

그는 ‘한반도 대운하와 국가 개혁’을 묻는 질문에는 “아버님께서 평소에 전문성이 없는 분야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며 웃으며 비켜 갔다. 그리고는 가슴에 손을 얹으며 “진정으로 한국인의 역동성과 열린 마음을 좋아한다”며 말을 맺었다.

대담=반병희 미래전략연구소장

정리=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국내 최초의 고품격 경영매거진 ‘동아비즈니스리뷰(DBR)’ 4호(2월 26일∼3월 10일)에 실린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DBR 웹사이트 www.dongabiz.com, 개인 구독 문의 02-721-7800, 단체 구독 문의 02-2020-0685

▼맥킨지 보고서/인재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많은 기업이 인사 시스템 및 프로세스 구축에 막대한 노력과 투자를 쏟지만 그 효과는 상당히 미흡하다고 맥킨지 보고서는 분석합니다. 이 보고서는 기업이 글로벌 인재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인재 육성 대상을 확대하고, ‘왜 우리 회사에 입사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양한 가치를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통찰의 미학/겉모양 아닌 내부 원리를 베껴라

벤치마킹에도 기술이 필요합니다. 먼저 같은 업종이 아닌 다른 업종의 성공 핵심을 적용해야 합니다. 자동차 회사가 벤치마킹해야 할 대상은 패션회사나 백화점, 식품회사입니다. 수입차 직수입 사업에 뛰어든 SK네트웍스가 벤치마킹한 대상도 하이마트였습니다.

▼HR스쿨/無감성 리더를 과감히 쫓아내라

직장인이 상사에게 가장 바라는 리더십은 무엇일까. LG경제연구원이 실시한 ‘직장인 리더십 진단’ 조사 결과 ‘창의적 감성 리더’로 나타났습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상사도 조직원의 헌신과 공감을 끌어내는 감성 리더십이 없다면 훌륭한 리더로 평가받지 못합니다.

한국의 리더에게 ‘감성 리더십’이 부족한 원인을 분석하고, 훌륭한 리더가 되기 위해 개인 스스로가 키워야 할 감성지능 5가지를 소개합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Breakthrough Ideas for 2008

지난호에 이어 HBR가 선정한 ‘2008년을 이끌 혁신적 아이디어’ 두 번째 편이 소개됩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새로운 통찰 △중국의 2급 도시 공략을 통한 성장 △이슬람 금융에 대한 관심 등이 제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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