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서병훈]숨어있는 인재도 찾아 나서라

  • 입력 2008년 1월 24일 2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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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박세리 선수가 미국여자프로골프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에 이름을 올렸다.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운데, 그것도 최연소로 명예의 전당에 가입했으니 정말 대단한 박세리다.

미국의 프로 스포츠 선수들이라면 누구나 다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길이 여간 힘들지 않다. 야구의 경우 은퇴한 지 5년이 지나고 기자단 투표에서 75% 이상의 지지를 받은 사람만이 명예의 전당 멤버가 될 수 있다. 미식축구에서는 그 기준이 80%로 올라간다. 이렇게 조건이 까다롭다 보니 어떤 미식축구 선수는 14년 연속 후보로 이름을 올린 끝에 간신히 ‘합격’하기도 했다. 실력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인품도 갖추어야 한다. 피트 로즈는 프로야구 통산 최다 안타의 기록에 빛나지만 감독 시절 승부를 조작한 불미스러운 사건 때문에 아예 그 꿈을 접어야 했다.

미국에 명예의 전당이 있다면, 프랑스에는 팡테옹이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립묘지쯤 되지만, 그 위상은 현격하게 다르다. 이곳에는 볼테르, 루소, 위고 등 그야말로 프랑스를 빛낸 불세출의 위인들만 묻힐 수 있다. 생전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고 금세 이곳에 올 수는 없다. 상당한 기간 역사의 이름으로 ‘검증’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대문호 알렉상드르 뒤마는 사후 132년을 기다려야 했다. 팡테옹은 한마디로 프랑스 역사의 정화(精華)요, 국민적 자긍심의 결정(結晶)과도 같다. 1981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그의 취임식을 굳이 이곳에서 가진 것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인물 발굴하는 포상제도 아쉬워

이처럼 세계 각국은 나름의 방식으로 국민의 귀감이 될 만한 영웅을 발굴하고 찾아서 그 업적을 기린다. 국가적 차원에서 ‘포상’을 실시하는 셈이다. 인재를 키우는 데 상을 주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이 또 있을까. 미국 아이들은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스타들을 동경하면서 미래의 꿈을 키운다. 프랑스 청소년들은 팡테옹에 묻힌 훌륭한 선조들의 삶을 눈여겨보며 자신의 사표(師表)로 삼는다. 뛰어난 인물들을 합당하게 평가하고 온전하게 예우하는 정신문화가 참으로 부럽다. 잘되는 나라가 그저 잘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각종 포상제도가 많다. 정부를 비롯한 여러 조직과 단체에서 큰 업적을 쌓은 사람을 찾아내 칭찬하고 격려한다. 그러나 아직은 부족하다. 팡테옹처럼 대한민국의 미래를 견인할 만한 그런 상은 없다. 수상자를 선정하는 것부터 문제가 된다. 이를테면 연말연시가 되면 대학마다 빠지지 않고 ‘올해를 빛낸 동문 상’ 같은 것을 준다. 그런데 수상자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소위 출세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내공이 깊은 실력자나, 보이지 않게 의로운 일을 하는 도덕성을 갖춘 인물에게 상을 주는 경우는 드물다.

그뿐만 아니다. 마땅히 상을 받을 만한 사람을 찾아 엄정하고 공정한 절차를 거쳐 상을 주어야 그 권위가 사는 법이다. 정치적 배경이나 개인적 ‘연줄’이 변수로 작용한다면 그건 상도 아니다. 가문의 영광은 될지 몰라도 국가적 경사는 될 수 없다. 이래저래 포상을 통해 미래의 동량을 길러 내고자 하는 포부가 무너지게 된다. 명예의 전당이든, 팡테옹이든 대한민국의 젊은 가슴에 불을 지를 수 있는 그 무엇이 절실하게 아쉬운 시점이다.

인재 풀 작다니 모욕받는 기분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람 찾느라고 난리다. 쓸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어느 정치인은 대한민국 인재 풀(pool)이 이렇게 작은지 몰랐다고 ‘개탄’하기까지 한다. 이런 황당한 언사를 앉아서 듣고 있자니 국민 전체가 도매금으로 욕을 먹는 기분이다. 도대체 무슨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기에 저런 말을 하는 것일까.

새 정부가 어떤 사람을 쓰느냐에 따라 한 시대의 인물론이 결정된다. 한국적 팡테옹의 기준이 마련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인격을 갖춘 실력자를 잘 찾아내야 한다. 점심을 같이 하던 역사학과 동료 교수가 긴 한숨을 내쉰다. 이명박 정부가 ‘냄새’ 솔솔 풍기는 사람들을 쓰겠다고 하니 나라 앞날이 걱정이란다. 덕분에 밥맛을 다 잃고 말았다.

서병훈 숭실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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