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조지형]‘이명박 정부’보다 ‘이명박 행정부’를 권한다

  • 입력 2008년 1월 16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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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은 곧 국가다.” 루이 14세가 말한 것으로 전해지는 이 말은 사료에 없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그 어떤 것보다 그 시대를 잘 대변해 주며, 그래서 아마도 그가 말했음직해서 역사가들이 자주 애용한다.

2002년 당시 노무현 당선인은 “국민은 대통령이다”라고 말했다. 제16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람들은 이 말을 명함에 새겨 다닐 만큼 중요한 정치구호였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희비애락의 삶을 강요당해 왔던 국민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신분상승’이었다. 그러나 잘 따져보면 이 말은 정치적 수사(修辭)였다. 대통령의 주인(主人)인 국민이 국민의 종복(從僕)인 대통령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선택한 ‘이명박 정부’라는 말은 어떤가? 인수위는 ‘이명박 브랜드’와 글로벌 스탠더드 등을 고려해 이렇게 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명칭은 여전히 권위주의적이며 글로벌 스탠더드에도 맞지 않는다.

첫째, 이 명칭은 우리말에 적합한가. 정부라는 말에는 크게 두 가지의 뜻이 있다. 하나는 입법, 행정, 사법 3부를 총칭하는 뜻이며 다른 하나는 특히 행정부를 지칭하는 말이다. 정부라는 용어가 상이한 범주의 두 가지 의미를 갖게 된 것은 기원적으로 권위주의적인 독일 및 일본 제국의 영향이고, 두 가지 뜻이 우리말에 남아 있게 된 것은 과거 독재정부와 권위주의적 권력구조의 탓이다. 유신 시절의 대통령은 3부의 권한을 넘어선 중재자로서 군림했고 행정부는 사실상 정부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행정부의 헌법적 한계를 넘어선 ‘정부’라는 용어를 고집하면 그것은 불행했던 과거 역사를 반복하는 것이다.

둘째, 이 명칭은 글로벌 스탠더드인가. 아니다. 제대로 된 대통령제에서 대통령 이름에 정부라는 이름을 붙이는 경우는 없다. 예컨대, ‘부시 정부’라는 표현은 우리식의 역어다. 영어로는 Bush Administration, 즉 ‘부시 행정부’라고 쓴다.

셋째, 우리의 헌법은 어떨까. 현행 헌법은 제4장에서 ‘정부’라는 표제 아래, ‘제1절 대통령’과 ‘제2절 행정부’를 두었다. 대통령은 행정부에 속하지 않나? 우리말의 일반 정의에 따르더라도 혼동이 온다. 이렇게 된 것은 1987년에 제대로 ‘민주화’의 헌법화가 실현되지 못한 까닭이다. 청산하지 못한 독재의 유산인 셈이다. 헌법 4장 표제의 ‘정부’는 3부의 총칭이 아니라 행정부를 의미하는 것으로, 4장 2절 표제의 ‘행정부’는 대통령을 제외한 행정부 조직이라는 협의의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그래야 민주항쟁의 소산인 현행 헌법의 입헌 취지와도 일치된다.

심지어 1988년 이후의 모든 행정부가 부분을 전체로, 행정부를 정부 전체인 것처럼 정치 구호를 만들어 권위주의적 정치풍토를 존속시켜 왔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가 그랬듯이, 참여정부도 그랬다. 제17대 대통령도 그럴 것인가. 글로벌 스탠더드와 현행 헌법의 민주화 정신을 따른다면, ‘이명박 정부’가 아니라 ‘이명박 행정부’라고 해야 맞다.

물론 명칭이 모든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명칭은 때로 사물을 정의하고 구성한다.

이름은 단순히 부르는 기능만 아니라 그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현실인식과 정체성, 그리고 비전을 주는 것이다. ‘이명박 행정부’를 권한다.

조지형 이화여대 미국법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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