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방형남]한국版메르켈을 찾습니다

  • 입력 2007년 12월 1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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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남북 관계의 맥을 가장 잘 짚은 말은 누가 했을까. 우선 노무현 대통령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인물평을 꼽을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주 CNN과의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을 “자기주장을 할 때는 하고 양보할 때는 확실하게 양보하고 협상 자체에 유연성을 가진 협상가”라고 평가했다. 대통령은 북한 지도자를 후하게 대접하고 있는데 눈치 없는 국민은 남북 정상회담을 비판하는 헛수고를 했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도 속내를 숨기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북한의 도발로 발생한 서해교전을 놓고 “안보를 어떻게 지켜 내느냐 하는 방법론에서 우리가 한 번 반성해 봐야 하는 과제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이 장관의 어록을 훑어보면 올해 잘못을 많이 한 쪽은 북한이 아니라 남한이다.

국민을 뒷전으로 내몬 對北정책

두 사람의 발언과는 결이 다른 말도 있다. “통일부 앞에 가서 목매달아 죽으려오.” 35년 전 납북된 남편의 귀환을 기다리던 박영자(65) 씨는 지난주 탈북지원단체를 통해 사진 속의 남편이 두 달 전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울부짖었다. 대통령과 통일부 장관이 북한 지도자를 치켜세우고 남북 관계를 미화할 때 납북자 가족들은 피눈물을 흘렸다.

결국 선택의 문제였다. 참여정부는 남북 관계에서 분단의 희생자인 국민을 뒷전으로 밀어냈다. 정상회담 총리회담 부총리회담이 이어졌으나 이산가족 국군포로 납북자에게는 희망이 생기지 않았다. 이산가족 가운데 해마다 4000∼5000명이 혈육 상봉의 한을 풀지 못한 채 세상을 뜬다. 1960, 70년대에 납북된 어부들도 노인이 됐다. 그들도 가족들도 하나둘 눈을 감는다. 남한과 북한에서 날마다 벌어지는 비극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개성공단에서 만드는 신발과 의류에 정신이 팔려 국민의 불행을 외면했다.

참여정부의 퇴장은 남북 관계에서도 다른 선택을 할 기회가 온다는 뜻이다. 물론 남북 합의는 연필로 쓴 게 아니어서 지우개로 쓱싹 지울 수는 없다. 우리는 걸핏하면 식언(食言)을 하는 북한이 아니다. 큰 틀에서 약속을 지키되 수정하고 보완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어떻게 할 것인지가 문제다.

시야를 넓혀 보자. 현재 유럽에서 중국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고른 길이고, 다른 하나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선택한 길이다.

올해 8월 베이징을 방문한 메르켈은 인권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했다. 그는 중국 지도자들에게 “인권은 외교의 최우선”이라면서 “국제 기준에 부합되는 외교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메르켈은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일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총리관저로 초청했다. 중국은 독일과의 고위급 회담 2건을 취소하는 등 보복에 나섰으나 메르켈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어디서 누구를 만날지는 독일 총리로서 내가 결정한다”며 “대중(對中) 무역 때문에 원칙을 양보할 수는 없다”고 맞섰다.

남북 합의 수정 보완해야

반면 사르코지는 인권외교를 포기했다. 그는 11월 중국을 방문하면서 인권담당 장관을 수행원에서 제외하고 인권 발언을 자제하는 등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사르코지는 300억 달러의 계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거뒀으나 인권에 관한 한 독일 총리의 발 아래 서게 됐다.

메르켈은 남의 나라 국민의 인권에 대해서도 할 말을 했다. 이산가족 납북자 국군포로는 우리가 보듬어야 할 우리 핏줄이다. 한국에도 메르켈처럼 인권 존중을 행동으로 보여 주는 지도자가 등장해야 한다. 국민을 우선하는 대북정책은 유권자들이 잊지 말아야 할 이번 대선의 선택 기준이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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