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녕]경선보다 못한 대선

  • 입력 2007년 11월 22일 00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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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대교의 길이는 얼마나 될까. 제 아무리 뛰어난 교량 전문가라도 사전 지식이 없다면 그 길이를 정확히 알아맞히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일반인 여러 명을 다리 앞에 세워 놓고 각자 길이를 적어 내도록 한 뒤 이를 모두 모아 평균을 내면 실제 길이의 근사치가 나오고, 사람 수가 많을수록 정확도가 높다고 한다. 대중(大衆)의 힘이 어떤 것인지, 대중의 생각을 전하는 여론조사를 왜 신뢰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한 정치컨설팅업체 대표가 자신의 저서에서 소개한 사례다.

최근 본보와 코리아리서치센터가 공동 실시한 대선 관련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 55.5%가 대선 후보의 능력과 경력을 보고 투표하겠다고 답했다. 정책이나 공약을 보겠다는 국민도 25.4%나 됐다. 경향신문과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조사에서도 대선 후보 선택 기준으로 능력과 정치적 리더십을 꼽은 사람이 각각 42.3%와 26.7%였다. 도덕성을 꼽은 사람은 14.6%에 불과했다.

두 건의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 보면 대선 후보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각이 어떤지를 쉽게 알 수 있다. 국민 10명 중 7, 8명은 후보가 국정을 잘 수행할 능력을 갖고 있는지, 대통령이 됐을 때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를 보고 표를 주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대중의 생각이고 민심이다. 이들의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다. 선거가 민심을 얻는 일이라고 한다면 각 정당이나 후보들이 지금 어떤 방향으로 뛰어야 하는지는 자명하다.

그런데 지금의 대선 판은 어떤가. 대통합민주신당은 경선을 끝낸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지금까지 한 일이라곤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를 흠집 내고 통합이나 후보 단일화를 위해 이 당, 저 당을 찔러본 것이 고작이다. 그렇게 공격을 했는데도 이명박 후보는 부동의 지지율 1위를 고수하고 있고, 이회창 씨가 출마하자 정동영 후보 지지율이 졸지에 3위로 내려앉았을 뿐이다. 민심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니 민심이 따라갈 리 없다.

한나라당은 신당의 공격을 막아내느라 허겁지겁하는 모습이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변칙 출마한 이회창 씨와 민주당 등 군소정당들은 도무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신당과 민주당의 통합 미수극은 코미디나 다름없다. 대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건만 국민에게 주는 감동이나 분위기는 오히려 각 정당의 경선 때보다도 훨씬 못하다는 느낌이다.

각 후보의 생각과 공약을 따져 봐야 할 국민이 금융사기범 김경준 씨에 대한 검찰 수사에 온통 관심을 빼앗기고 있는 것도 결코 정상이 아니다. 김 씨 사건은 이제 어느 쪽의 일방적 주장으로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 누가 무슨 주장을 하든, 무슨 서류를 내놓든 국민은 믿기 어렵다. 지금 상황에선 검찰 조사 결과를 일단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선거에서 이기는 고전적인 방법은 내 표는 늘리고 경쟁 상대의 표는 깨는 것이다. 합당, 연합, 후보단일화 등으로 선거 구도를 인위적으로 재편하는 전략을 구사하거나 경쟁자를 상대로 네거티브 전술을 쓰는 것도 결국 이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술전략도 대중의 생각과 일치할 때라야 통한다. 바른 선거 전략은 대중의 생각을 제대로 읽고 그 방향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국민은 민생과 나라의 장래 모습을 생각하며 후보들을 저울질하고 있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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