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호기]실용주의로 가는 ‘유럽의 맏형’

  • 입력 2007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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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 크게 바뀌고 있다. 특히 강중국(强中國)인 영국 독일 프랑스가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2005년 독일에서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민-기사-사민당 대연정이 이뤄졌고 올봄 프랑스에서는 대중운동연합 후보 니콜라 사르코지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어 영국에서도 노동당 고든 브라운 전 재무장관이 토니 블레어의 뒤를 이어 총리에 취임했다.

英獨佛탈이념 개혁 삼두마차

세 나라의 변화를 이끈 원인은 세계화의 충격이다. 세계화는 국가 간, 기업 간 무한경쟁을 강화한다. 하지만 유럽 강중국들은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웠다. 새로운 발전 전략의 선택은 정부 기업 노조 등의 세력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며 복지국가가 강고했던 만큼 변신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변화의 선두 주자는 영국의 블레어 정부다. ‘제3의 길’을 내건 블레어는 시장의 활력 및 경쟁력을 제고하는 동시에 일자리가 곧 복지라는 ‘적극적 복지’와 ‘사회투자국가’를 추진했다.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정부가 추진한 시장 주도의 경제정책에 더하여 ‘일하는 복지’ 정책으로 사회적 형평을 이루려는 블레어와 브라운 정부는 노쇠한 영국을 젊은 영국으로 변화시켰다.

영국의 ‘제3의 길’은 독일의 ‘신(新)중도’ 노선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98년 집권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정부는 2003년 복지를 줄이고 일자리를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한 ‘의제 2010’을 마련했다. 이는 전후 두 번째 대연정의 출발점이 됐다. 기업세금 감면, 실업급여 삭감, 해고규제 완화 등을 추진함으로써 시장의 활력을 부여하려는 독일판 중도주의는 메르켈 정부 아래서 서서히 성과를 내고 있다.

상대적으로 뒤늦은 프랑스의 개혁은 독일보다도 더 시장친화적인 해법이다. 최근 사르코지 정부는 공무원특별체제 연금개혁안을 놓고 노조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문제는 여론의 향방인데 정부의 전방위 개혁은 과반수의 지지를 얻는 것으로 나타난다. 프랑스의 현 상황은 1984년 영국의 대처 정부와 광산노조 간 대결을 떠올리게 한다.

영국 독일 프랑스의 경험에 물론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영국 노동당 정부가 ‘진보적 중도주의’를 개척해 왔다면 독일 연립정부는 ‘중도적 중도주의’를 추진해 왔으며 최근 프랑스 정부는 ‘보수적 중도주의’ 개혁을 단행하고 있다. 하지만 공통점 또한 존재한다. 그것은 시장에 활력을 부여하고 기업경쟁력을 강화함으로써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탈(脫)이념적 실용주의 개혁이라는 사실이다.

그동안 유럽 강중국들이 직면한 딜레마는 미국 일본처럼 내수시장이 큰 강대국의 발전 전략을 따르거나 덴마크 아일랜드처럼 해외시장에 의존하는 강소국의 전략을 채택하기 어려웠다는 데 있다. 내수시장과 해외시장을 동시에 겨냥해야 하고 글로벌 기업과 전통적인 중소기업을 동반 성장시켜야 하는 것이 강중국의 이중 과제였다. 전통적인 ‘케인지언 복지국가’에서 새로운 ‘슘페터리언 혁신국가’로 나아가려는 전략에서 이들은 그 해법을 찾고 있는 셈이다.

‘일자리가 곧 복지’ 인식 전환을

유럽의 실험은 먼 산의 불이 아니다. 최근 우리 국민 다수 역시 시장의 활력이 부여되고 일자리가 창출되며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을 원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제시된 대통합민주신당의 ‘차별 없는 성장’, 한나라당의 ‘747’(7% 경제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 민주노동당의 ‘진보적 경제성장’ 역시 이를 반영한다. 또한 ‘사람중심 진짜경제’를 강조하는 창조한국당 역시 8%의 성장률을 내걸고 있다. 어떤 성장을 모색하고 어떻게 일자리를 더 많이 창출할 것인가는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발등의 불이다. 생산적인 토론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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