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병기]‘땀’만으로는 부족한 세상

  • 입력 2007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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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같은 업종의 기업 간에도 성공과 실패가 나눠질까. 어떤 차이가 이런 결과를 가져올까. 중국에 진출한 4만여 개 중소기업의 성공과 실패를 취재하면서 품은 화두(話頭) 중 하나였다.

칭다오(靑島)에서 만난 한 기업인이 해답의 실마리를 주었다. 15년 전 중국으로 건너간 중국 진출 1세대다. “불철주야 일하지 않은 기업인은 없다. 차이는 단 하나. 사장이 번민의 밤을 지새워 직접 새로운 성장의 길을 찾아냈느냐, 관성적으로 일만 했느냐가 성패를 갈랐다.”

이른바 ‘사양(斜陽)산업’이면서도 경쟁력을 유지한 기업을 살펴보면 그의 말과 일치한다. 오로라월드는 완구업에서 부가가치를 높여 캐릭터 업체로 변신했다. 중국이 세계 완구시장을 싹쓸이하는 와중에도 버티는 이유다. 수백 개의 액세서리 업체가 사업을 접을 위기에 있지만 솔렉스는 디자인 개발 능력에 집중해 고부가가치의 패션 액세서리 업체로 건재하다.

의류 가공무역을 하던 임영철 사장은 ‘언더룩’이라는 명품 브랜드를 구축해 50여 개의 중국 백화점에 매장을 낼 수 있었다.

취재를 마칠 때쯤 3년 전 한 컨설팅회사의 대표가 사석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그는 “한국인은 저(低)생산성의 문제를 블루칼라나 노동시간과 연결시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지금 한국 기업에서 생산성이 가장 떨어지는 부문은 화이트칼라, 그것도 경영진이다. 그들은 과거의 성공 모델에만 안주한다. 변해야 할 곳은 공장 근로자가 아니라 결재 도장이나 찍으며 앉아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 회사의 문제가 무엇이냐고 묻는 임원에게 문제는 바로 당신이라고 말해 주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털어놓았다.

글로벌 마케팅, 브랜드 구축, 해외 인수합병(M&A), 디자인 경영 등 새로운 성장의 길을 찾는 방법은 다양한데 한국의 임원은 공정 효율화를 통한 원가 경쟁력 확보에만 생각이 고정돼 있다는 것.

그의 지적은 최근 미국 애플사 아이폰의 성공, 중국 기업의 공격적인 해외 M&A 등 한국 기업에서 볼 수 없는 전략으로 성공 가도를 달리는 외국 기업을 보면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2007년 최고 발명품으로 선정한 아이폰에는 별다른 기술이 없다. 한국 기업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제품이다. 우리가 부족한 것은 소비자의 잠재된 욕구를 꿰뚫어 보고 감성적인 디자인으로 표현하는 능력이다.

한국 대기업이 1970, 80년대 해외 M&A의 실패 경험 때문에 주저하는 사이에 중국 기업은 과감하게 글로벌 기업을 인수하고 있다.

다행히 최근 국내에서도 디자인, 글로벌 마케팅, 창조 경영, 해외 M&A에 대한 관심이 일고 있다. 한 박자 늦었지만 한국 기업이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경영학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가 ‘효율’과 ‘효과’라는 표현으로 경영자에 대해 설명했다. “효율보다 중요한 것은 효과다. 효율은 주어진 일을 어떻게 바르게 처리하느냐는 것으로 관리자의 일이다. 효과는 무엇이 옳은 것인지 찾는 것으로 경영자의 책무다.”

외환위기 이후 강산이 한 번 변했다. 기업에 다시 성장의 날개를 달아 줄 경영자가 필요한 때다.

이병기 경제부 차장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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