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권희]‘식물 정책’에 대못 박기

  • 입력 2007년 11월 4일 21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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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세그웨이’라는 1인용 첨단 전동스쿠터가 공개되자 ‘개인용 컴퓨터만큼 중요한 발명품’이라는 등 찬사가 잇따랐다. 발명가는 휴대용 인슐린 펌프 등을 발명해 부자가 된 미국의 딘 케이멘. 그는 배우기도 쉽고 매연도 뿜지 않는 세그웨이가 도심과 산책길을 뒤덮을 것으로 자신했다.

그러나 다음 해 출시된 세그웨이는 ‘가장 비싼 이륜 장난감’이란 혹평을 들었다. 올해 6월 미국 경제잡지 비즈니스2.0은 이 제품을 ‘역대 5대 실패 상품’ 중 하나로 꼽았다. 대당 가격이 5000달러 정도로 내려갔지만 ‘신기술 제품이 사람들에게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지 못해’ 실패했다는 것이다. 경영대학원에선 “케이멘이 과거의 성공에 취해 소비자의 시각은 무시하고 신제품을 밀어붙이다 실패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개발비 1억 달러가 아깝다.

세그웨이처럼 신기술 상품도 아닌 데다 마케팅도 제멋대로여서 실패한 사례가 균형발전정책인 것 같다. 대선판 소용돌이에 묻히고 말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경남 진주혁신도시 기공식에 앞서 의미 있는 발언을 했다.

“지역균형발전 정책이 대의가 분명하고 타당성이 있어 대선 후보들이 공약으로 채택하거나 지원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 2단계 정책이 표류할 것 같다. 국회가 이 문제를 다시 한번 들여다봐 달라는 간절한 심정으로 말씀드린다.”

‘식물 정책’이 될까 안타까워하는 말로 들린다. 9월 12일 제주혁신도시 기공식에서 “임기 안에 첫 삽을 뜨고 대못을 박아 버리고 싶다”며 ‘현직(現職) 파워’를 과시할 때도 한편으로는 신세 한탄을 했다. “제가 더는 균형발전정책을 지킬 수가 없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여러분이 지켜 달라.”

국회를 향한 그의 간청은 좀 늦은 것 같다. 전국을 1∼4그룹으로 나눠 낙후지역에는 법인세 감면 등 혜택을 주는 국가균형발전특별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돼 있지만 현 정부 임기 안에 처리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대선정국인 데다 법안에 대한 찬반 대립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에 대비해 노 대통령은 국회를 설득하거나 정책을 정교하게 만드는 작업을 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그가 택한 것은 ‘대못 박기’였다. 혁신도시 터의 보상 협의조차 부진한 상황에서 스스로 “좀 서두른다”면서 기공식을 밀어붙였다. 세그웨이가 인기가 없는데도 ‘기막힌 발명품’이라며 세계에 양산(量産)공장을 짓겠다는 것과 비슷한 꼴이다. 사업비가 국민 세금에서 나오니까 그랬지, 대통령과 장관, 관련 공무원들이 개인 투자금으로 벌이는 사업이라도 강행했을까.

국정홍보처는 며칠 전 ‘국민 93.6%가 균형발전이 필요하다고 여긴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그럴 수 있다. 균형발전을 누가 나쁘다고 했는가. 문제는 노 정부가 지향하는 수도권 규제를 통한 균형, 나눠 주기 식 균형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많다는 점이다. 현 정부는 정책 실패로 균형발전이라는 대의마저 손상시킨 것을 자책해야 한다.

노 대통령은 2005년 연정(聯政)을 제안할 때 ‘우리 정치의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해’라고 했다가 올해는 “상대방(야당)을 난처하게 하려고 수류탄을 던져 본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균형발전정책에 대해선 훗날 뭐라고 할까. “멋있는 말이어서 한번 해 봤는데, 정치적으로 좀 건졌다”고 하지나 않을지 찜찜하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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