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오공단]탈북자들의 달라이 라마

  • 입력 2007년 10월 22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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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는 ‘바다’라는 몽골 말이고, 라마는 ‘정신적 스승’이라는 티베트 말이다. 그래서 달라이 라마는 ‘지혜의 바다’로 불린다.

그가 미국을 찾았다. 이번엔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만나 강연을 하려고 온 게 아니라, 미국 의회가 수여하는 황금 메달을 받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영예로운 메달이다.

물론 그는 1957년 인도에서 인문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이래 세기 힘들 정도로 많은 명예박사 학위와 훈장, 메달, 세계적으로 명성이 있는 상을 받았다. 1989년엔 노벨 평화상도 수상했다. 그런 달라이 라마의 방문을 중국은 “분열주의자의 위험스러운 미국 방문”이라고 혹평하며, 주미 중국대사를 본국에 부르는 별로 아름답지 않은 행태를 보였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는 사람들에게 미소와 사랑을 만들어 낸다. 그 덕택에 중국의 혹평도 비판도 그다지 많은 시선을 모으지 않고, 달라이 라마의 방문은 잘 진행됐다.

미국에 간 지 얼마 되지 않은 1979년, 나는 달라이 라마를 학교 캠퍼스의 강당에서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그가 미국 초행길에 들른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캠퍼스는 흥분과 기쁨의 기대로 가득 찼다. 중국과 티베트에 대한 지식이 얕았던 나는 그저 미국 동급생들이 훌륭한 정신적 지도자가 오니, 같이 가 보자고 채근해 따라간 터였다.

우리 양심 일깨운 윤요한 목사

강연장에서 받은 인상은 꽤나 오랜 시간 머리에 남았다. 전염병처럼 번지는 미소, 손을 잡자 따끈하고 부드럽던 느낌, 평소 늘 진보와 보수의 이념 대결로 데모하기 바쁘던 캠퍼스가 평화와 사랑의 물결에 휩싸인 듯했던 신비한 분위기의 기억들이다.

달라이 라마의 강연을 듣고 같은 공간에서 서너 시간을 보낸 일이 하도 귀중해서 숨도 쉴 수 없이 흥분했다고 하는 동급생들에게 물어 보았다. 왜 그가 그렇게 인기 있느냐고. “정신적으로 그는 사려 깊은 사람이며, 우리들에게 평화와 사랑을 심어 주기 때문”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달라이 라마가 받은 의회 메달처럼 명성 있는 상은 아니지만, 비슷한 시기 뉴욕 시에서 북한 태생의 필립 벅 목사가 2007년도 용감한 시민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악에 맞서 끊임 없는 반항과 용기를 보인 시민에게 수여하는 것으로, 뉴욕에 소재한 트레인재단이 매년 한 명을 선정한다. 미얀마의 군정에 맞서 투쟁하는 민간 지도자, 앙골라의 내전을 고발해 전 세계의 이목을 받은 작가, 그리고 체첸 내전을 기사로 쓰다가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에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안나 폴릿콥스카야 등이 이 상을 받았다.

이런 반열에 떳떳이 오른 분이 바로 벅 목사다. 그의 한국명은 윤요한이다. 기아 때문에 중국으로 탈출한 북한인들을 돕기 위해 생명을 무릅쓰고 애쓰다 2005년 중국 공안에 체포돼 15개월간 옥살이를 하고 미국과 여론의 압력으로 풀려났다.

“인간으로서, 동족으로서 어떻게 그들을 내버려 둘 수 있습니까? 갓난아기가 어머니 등에서 영양실조로 죽고, 전 가족이 수용소로 가고, 총살당하고, 고문당하는 같은 동족을 알고 있는 이상 어떻게 방치할 수 있습니까?” 그가 상을 받은 뒤에 내뱉은 절규와도 같은 소감이다.

北주민 참상 증언 가슴 찔러

달라이 라마가 미국인들에게 평화와 사랑을 가져 왔다면, 벅 목사는 우리 양심을 꼭꼭 찌르는 자극을 줬다. 전 주한 미국대사, 관리, 저널리스트, 대학생, 자원 봉사자, 인권 전문가, 나 같은 한반도 출신 사람들이 숨죽인 채 그의 고통스러운 증언을 들었다.

그가 묘사하는 북한인들의 참상이 따끔따끔 가슴을 찌른다.

그가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물었다. “제 이야기를 들은 이상 이제는 중국 태국 몽골 등지에서 떠도는 불쌍한 탈북자들을 외면할 수 없지 않습니까? 할 수 있는 한 도와줘야지요.”

그가 탈북자들의 달라이 라마처럼 보이며, 그의 진지한 얼굴이 아름답게 보였다. 그도 달라이 라마도 우리들을 일깨워 주는 지도자다. 그리고 벅 목사와 같은 민족인 게 자랑스러웠다.

오공단 미국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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