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최인호]돼지농가의 희망 ‘난드롤론’

  • 입력 2007년 10월 22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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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육식의 대상이 되는 수컷의 정소에서 나오는 물질이 노화를 억제해 주고 젊음을 유지해 준다고 믿었다. 1930년대 정소에서 만들어진 남성호르몬이 정제되고 화학구조가 밝혀진 후 많은 제약회사가 자연계에 존재하는 남성호르몬보다 더 강력한 효과가 있는 호르몬을 만들었다. 바로 아나볼릭스테로이드이다.

처음에는 새로운 불로초 같다며 기대를 품게 했지만 과도하게 사용할 경우 남성의 생식기능이 저하되고 심혈관 질환이 생기는 등의 부작용 때문에 1964년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운동선수의 아나볼릭스테로이드 복용을 금지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수퇘지 몸에서는 인간을 포함한 다른 동물에게서는 잘 생산되지 않는 난드롤론(nandrolone)이라는 아나볼릭스테로이드가 많이 합성된다는 사실이다. 이 호르몬은 인체에서 만들어지는 일반적인 남성호르몬보다 근육성장 촉진 효과가 훨씬 강력해 운동선수가 약물로 복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난드롤론이 운동선수에게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화상 수술 방사선치료를 받은 환자나 에이즈 환자에게 근육을 회복시키기 위한 약으로 사용된다. 빈혈과 뼈엉성증(골다공증) 치료제, 피임약에도 쓰인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주 먹는 돼지고기에는 얼마만큼의 난드롤론이 존재할까? 예전에는 달랐겠지만 요즘 고기 생산을 목적으로 키우는 수퇘지는 새끼 때 거세하기 때문에 돼지고기 내에 이 호르몬의 양은 매우 적을 것으로 추측된다. 새끼 수퇘지를 거세하지 않으면 정소에서 만들어지는 특이 스테로이드로 인해 돼지고기에서 심한 냄새(웅취)가 난다.

금지 약물로서의 부정적인 측면과 치료 약 또는 건강 증진제로서의 긍정적인 측면을 모두 갖는 난드롤론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난드롤론은 어쩌면 로마신화에 나오는 두 얼굴의 야누스와 같은 존재다. 결국 어떤 목적으로 어떤 용량을 적용하는가가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남은 과제는 돼지의 정소에서 많이 생산되는 난드롤론을 어떻게 우리 몸에 이로운 물질로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느냐에 있다. 거세하지 않고서도 선택적으로 웅취가 생성되는 원인을 차단해 육질과 냄새가 좋고 난드롤론을 많이 만들어 내는 돼지를 개발하는 일도 큰 과제이다. 해답을 찾아 가면 언젠가는 노화를 예방하고 젊음을 좀 더 오래 유지하는 획기적인 건강 증진 물질을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돼지고기를 지방과 단백질 공급원으로 먹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한의학서인 동의보감에는 조상들이 난드롤론을 만드는 돼지의 정소를 약으로 활용한 기록이 있다. 또 난드롤론이 포함됐을 돈육에 대해서도 현대적인 효능과 유사한 내용으로 효능을 설명한다.

예를 들면 “힘줄과 뼈가 허약한 경우와 피부가 헌 데 쓴다”고 표현했다. 정상적인 식이 섭취와 같은 형태로 이 호르몬이 공급될 경우 긍정적 효능이 나타날 뿐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음을 간접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인 셈이다. 다만 지나치게 오랫동안 다량을 섭취하면 다른 약의 기운을 없애고 풍을 유발할 수 있다고 했다.

앞으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거세하지 않고도 웅취를 제거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인체에 유용한 성장촉진 물질을 포함한 기능성 돼지고기를 생산하며, 돼지의 정소에서 만들어지는 이 물질을 천연 치료제로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런 연구는 어려운 축산농가에 희망이 되며 생명공학(BT) 한국의 미래를 조망하는 하나의 초석이 될 것이다.

최인호 영남대 교수·생명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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