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정위용]최덕근 영사 피살 11년

  • 입력 2007년 10월 1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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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에 간 고인은 말이 없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고통이 남지요.”

최덕근 전 블라디보스토크 영사 피살 사건이 일어난 지 꼭 11년이 지난 1일, 최 영사와 알고 지내던 지인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타살임이 명백한데도 11년이나 진상이 묻혀 온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짙게 배어 있었다.

북한의 뒷마당으로 불리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교민 보호 업무를 맡았던 최 영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교과서처럼 원칙에 충실했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망 전 북한의 마약 밀매 동향을 캐기 위해 러시아-북한 경계지역이던 하산까지 가서 목숨을 건 첩보전에 뛰어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피살 당시 그의 주머니에서 나온 북한 공관원의 마약 밀매 실태나 평양의 위폐 공장 등에 대한 메모도 험난한 행적의 일단을 말해 준다.

1996년 10월 2차 부검 결과 괴한이 휘두른 칼에 맞은 그의 몸에서는 북한 공작원들이 ‘만년필 독침’에 주로 사용하는 ‘네오스티그민 브로마이드’라는 독극물이 검출됐다.

그러나 러시아 당국은 이 일을 단순 살인 사건으로 몰고 갔다. 최근에는 주러 한국대사관에 “수사 종결에 동의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러시아 형법상 살인 사건의 공소시효는 15년이다. 공소시효가 4년 남은 사건에 대해 수사 종결을 서두르는 이유를 러시아는 “본국 영토 안에서는 조사를 할 만큼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영사의 지인들은 “진상 규명이 한국-러시아-북한의 삼각 외교 틀 속에 갇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상이 드러날 경우 러시아는 북한과의 외교 단절까지도 생각해야 하지만 이는 러시아에 손해가 되기 때문에 수사 조기 종결 카드를 꺼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북한 첩보를 수집했던 최 영사의 특수한 직무 때문에 한국과 러시아 양국 모두에 ‘말 못할 사정’이 있다는 얘기도 아직 흘러나온다. 이 사건에 연루된 러시아인들 때문에 진상이 밝혀지기 어렵다는 추측도 무성하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거론된 여러 ‘특별한 사정’ 중 어느 것도 이 사건의 진상 규명을 가로 막는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수긍하기 어렵다. 설령 스파이 스캔들이라고 해도 개인의 일생을 파괴한 사건에서 범인을 지목하지도 못하고 조사를 끝내는 것은 국제관례와 상식에 맞지 않는다.

영국은 러시아 전직 연방보안국(FSB) 출신인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 씨 독살 사건 조사에서 외교관 맞추방, 러시아 내 석유 개발권 박탈이라는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러시아에 살인 용의자 소환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최 영사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강한 진상 규명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현직 외교관 피살에 대한 진상 규명이 멀어져 가고 있는 지금 러시아 내 한국 외교관들이 그를 추모하는 모임을 가졌다는 얘기조차 들어 본 적이 없다.

주러 한국대사관은 2005년 10월 국정감사 당시 홍준표 의원에게서 “최 영사 피살 사건 진상 규명 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사건 해결을 위해 러시아 정부와 적극 협력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유창한 답변만 있었을 뿐 행동은 뒤따르지 않았다. 한국 정부가 러시아 측에 수동적인 자세로 끌려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지금처럼 시간이 흐른다면 이 사건은 단지 ‘피살의 추억’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공소시효를 꽉 채워 살인자의 형사 책임을 벗겨 주는 선례를 남길 것인가”라고 묻는 목소리까지 묻히지는 않을 것이다.

정위용 모스크바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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