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승련]워싱턴서 ‘헛발질’하는 한국 외교

  • 입력 2007년 10월 1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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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미국 워싱턴에서는 남북 정상회담 성과를 알리고 6자회담의 속도를 내기 위한 한국 정부의 전방위 홍보 노력이 진행됐다. 그러나 전현직 고위 인사들의 행보에선 왠지 모를 조바심이 묻어났다. 메울 수 없는 한미 간 간극을 보는 것 같아 입맛이 씁쓸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11일 조지워싱턴대의 세미나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과 북한 핵문제 해결이 서로 보완 관계임이 입증됐다”고 주장했다.

남북 공동선언문 가운데 혼란을 불렀던 ‘종전선언을 위한 3자 혹은 4자 정상회담’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그는 “3자회담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구상이며 3자는 남북한과 미국을 의미한다”고 단언했다. 지난해와 올해 한미 정상회담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자 이런 세미나에선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 발생했다. 모린 코맥 국무부 한국과 부과장이 발언권을 신청해 “부시 대통령은 한반도 종전선언 참가자의 수를 결정한 적도, 언급한 적도 없다. 백악관에 확인했다”고 반박했다.

웬만해선 공개석상에서 어색한 장면의 연출을 꺼리는 것이 외교관의 속성이다. 동맹국의 전직 통일부 장관의 말을 공개적으로 바로잡은 일은 왜 빚어졌을까.

한미 관계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9월 시드니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을 몰아세웠던 장면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한국이 차분히 비핵화 노력이 결실을 거두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일단 선언부터 하려는 것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내비친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평양행을 한국이 잇달아 촉구하는 것도 ‘서울이 서두른다’는 인상을 풍긴다.

워싱턴타임스는 11일 1면 머리기사로 이태식 주미 대사의 인터뷰를 실었다. 그가 전날 2시간 가까이 신문사를 방문해 현안을 설명한 데 따른 것이었지만 아쉽게도 ‘한국대사가 라이스의 방북을 촉구했다’는 제목이 뽑혔다. 외교적 결례라는 지적이 뒤따랐다.

정상회담 성과 홍보차 워싱턴에 온 이수훈 동북아시대 위원장이 ‘라이스 방북’의 당위를 거듭 강조했지만 주목을 끌지 못했다.

문제는 국무부가 이미 2주 전쯤 “방북 논의는 시기상조”라는 논평을 냈다는 데 있다. 급기야 톰 케이시 국무부 부대변인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그런 방북 계획은 들어본 적 없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승련 워싱턴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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