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송영대]北에 NLL 재설정 길 터주나

  • 입력 2007년 10월 1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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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은 영토선이 아니다”라는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가 위험천만한 발언이라고 일제히 비난하는가 하면 군 관계자들도 심히 우려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노 대통령 발언의 핵심은 NLL 남쪽 바다를 대한민국 영토라고 고집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동안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NLL은 영토 개념이 아니다”라고 주장해 왔는데 그 뿌리는 역시 대통령이었다. 이들 발언의 배경에는 북한이 요구하는 NLL 재설정의 길을 터 주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50년간 지켜 온 바다 방어선

4일 발표된 남북 정상 공동선언은 북한 선박의 해주 직항로 통과와 서해 공동어로수역 설정을 명시하고 있다. 북한 선박들이 NLL을 정면 돌파해 해주항을 자유롭게 드나들고 NLL 공동어로수역 설정으로 북한 선박들의 자유 통항이 실현될 경우 NLL은 사실상 무력화될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과 통일부 장관의 발언은 이 같은 상황 전개를 염두에 둔 사전 포석일 가능성이 크다. NLL이 휴전선처럼 남북 합의에 따라 그어진 것은 아니지만 쌍방이 50여 년간 지켜 온 선이므로 관습법적 측면에서 보아야 한다. 유엔군사령관이 1953년 NLL을 설정한 후 20년간 북한은 단 한 번도 NLL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처럼 북한이 NLL에 대해 1973년 서해사태 도발까지 20년간이나 이의 제기 없이 묵종(默從)했기 때문에 국제법적으로도 해양경계선으로 효력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NLL은 군사분계선(MDL)과 마찬가지로 남북 간에 불가침 경계선의 성격을 띠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MDL 남쪽이 우리 영토인 것처럼 NLL 남쪽도 우리 영토이다. 영토란 무엇인가? 한 국가가 실효적으로 영유하고 있는 땅이다. 국가의 통치권이 미치는 지역이다. NLL은 50년간 대한민국이 영유해 왔고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실효적으로 미치는 해역이다. 그리하여 우리 해군 장병들이 NLL을 지키기 위해 1999년과 2000년 서해교전 때 피를 흘리며 싸운 게 아닌가? 우리 국민은 NLL을 당연한 불가침 경계선으로 인정하고 있고 NLL 남쪽 바다는 우리 영토로 확신하고 있다. 서해 5도를 포함하는 인천 옹진군 주민들의 관점에서 보면 NLL은 생존선이다. NLL의 전략적 가치는 수도권 방위와도 직결돼 있어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방어선이다.

영토는 국민 주권과 함께 목숨으로 지켜야 할 국가의 기본 요소이다. 대통령은 국민 주권 영토를 보위할 막중한 책무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NLL이 영토선이 아니라며 허물고 있는 것은 국가 보위에 관한 책임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더욱이 그의 발언은 NLL이 1953년 유엔군사령관이 일방적으로 그은 선으로 유효하지 않다는 북한 견해에 동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北도발 포기한 뒤에 논의 가능

수십 년간 지켜 온 우리 영토를 내달라는 북한의 NLL 재설정 요구에 맞장구치고 있으니 대통령은 어느 나라 대통령이란 말인가. 물론 NLL이 영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북한이 무력 도발을 포기하고 남북 간에 군사적 신뢰와 평화가 정착된 후에나 논의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이것이 1991년 체결된 남북 기본합의서의 기본 정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아무런 군사적 신뢰관계가 없는 상황에서 NLL만 내주는 것은 국가 안보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용인, NLL 무력화, 국가보안법 폐지의 길을 터 주는 등 우리의 안보 이익을 희생하면서 엄청난 대북 경제 지원만 해 주는 것이 과연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반문하고 싶다.

송영대 전 통일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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