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임강원]대운하 재검토, 중립적 전문가에게 맡겨야

  • 입력 2007년 10월 4일 03시 02분


코멘트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한반도 대운하 공약에 대해 “집권하면 세계적인 기술로 검증하고 국내외 환경 전문가들로 하여금 재검토하게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은 대단히 중요한 발전이다. 현재 여론조사에서 가장 유망하다고 꼽히는 후보가 10년 이상 집념을 갖고 다듬어 온 핵심 공약을 좀 더 냉정하게 재검토하겠다고 한 것은 다행스럽다.

여기에 추가해야 할 조건은 교통 물류 토목 환경 수자원 등 해당 분야의 학계에서 존경받고, 선입견을 갖지 않은 중립적 전문가에게 재검토를 맡겨야 한다는 점이다. 노태우 후보의 경부고속철도나 노무현 후보의 행정수도 이전처럼 국가 경제를 멍들게 하는 대형 사업을 국책연구기관을 앞세워 반복하면 국가의 미래가 암울하다.

한반도 대운하, 경부고속철도, 행정수도 이전 사업은 타당성에 대한 견해가 극단적으로 갈린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형 사업의 계획과 타당성 평가는 과학적 검증만으로 완성될 수는 없고, 경제적 평가가 가치판단의 영향을 받는다. 국책사업에 대해 전문가의 견해가 극단적으로 상반된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음을 지도자는 경청해야 한다.

경부고속철도는 충분한 사전 조사와 타당성 평가 및 계획 설계가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을 묵살하고 서둘러 건설하는 바람에 착공 이후 15년이 경과한 지금까지 당초 예산의 4배까지 투자하고도 터미널체계 등이 미비하다. 또 경제성이 높다는 당초 평가와는 달리 운영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

행정수도 이전 사업은 처음에는 임시행정수도로 공약했다가 당선 후 다른 논리로 수도이전(천도)이라고 말을 바꾸더니만, 다수 국민의 반대에 부닥치자 행정중심복합도시로 둔갑시켜 시행하고 있다. 제 기능을 못하는 반쪽 수도로 전락함으로써 동북아 무한경쟁 시대에서 한국 경제가 감당할 부작용은 먼 훗날까지 두고두고 이어질 것이다.

한반도 대운하도 그 타당성에 찬반 양측의 견해가 첨예하게 대립한다. 찬성하는 측은 건설비로 대략 18조 원이 소요되지만 내륙 수운에 따른 운송비 절감, 관광산업 확대, 토지 조성, 골재 획득, 홍수 조절과 수자원 관리 등으로 편익이 충분하다고 한다.

반대하는 측은 운송비 절감과 관광 진흥 그리고 토지 조성과 골재 개발에 따른 편익 추정은 순전히 허구에 불과하고, 수계(水系)를 넘어 광역적으로 홍수 조절을 시도하는 방안은 비경제적이며 무모한 발상이라고 주장한다. 또 강 유역의 생태 변화가 엄청난 환경 재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대상이 비교적 구체적인 건설사업이기 때문에 충분한 예산과 시간을 들여 엄정한 조사연구를 한다면 결론은 통일될 것으로 확신한다. 그런 절차 없이 만약 제한된 정보로 예단을 한다면 그것은 국민 경제를 담보한 도박일 뿐이다.

국내에서는 선진국처럼 국가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대형 사업에 엄정한 기술적 평가와 계획 과정을 거치게 하는 장치가 미흡하고 임의적 요소가 크다. 지난 두 번의 대통령선거에서 보았듯이 일단 집권을 하면 보강된 정보와 분석능력으로 선거공약을 정치력으로 밀어붙인다.

집권자가 바뀔 때마다 소중한 국가 자원을 낭비한다면 선진국 진입은 요원한 일이다.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집권 후 재검토하겠다는 말을 지킨다면 관행화된 후진적 공약 문화의 고리를 끊고 선진적 행정제도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임강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