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권순택]권력형 거짓말의 부메랑

  • 입력 2007년 9월 30일 19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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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자유를 제약하기 위해 세금 61억 원이 들어간 정부의 기자실 대못질 공사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5개월 후면 떠날 세입자가 큰돈을 들여 집 구조를 바꾸고 인테리어 공사까지 한 꼴이다. 공돈으로라도 그런 공사를 하는 세입자를 이해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권력의 생리를 알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어떤 권력이나 언론의 비판을 싫어하고 필요에 따라 거짓말을 한다. ‘언론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언론을 택하겠다’고 한 토머스 제퍼슨 미국 대통령조차 권력을 잡은 뒤 언론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언론 자유를 제약하는 법은 아예 만들지 못하도록 못 박은 미국 수정헌법 1조는 그런 권력의 생리를 간파한 결과물이다.

미국의 권력도 거짓말하는 일은 흔했다. 암살된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승계한 린든 존슨은 1963년 베트남전 상황을 정확히 알기 위해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을 현지에 보냈다. 사흘 뒤 돌아온 맥나마라는 기자들에게 현지 상황이 대단히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에게는 정반대의 진실을 보고했다. 1971년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의 베트남전 관련 국방부 기밀문서(펜타곤 페이퍼) 공개로 진실이 드러나는 데 8년이 걸렸다.

노무현 대통령만큼이나 비판 언론을 싫어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대변인 론 지글러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깜도 안 되는 강도사건’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닉슨 대통령은 워싱턴포스트의 끈질긴 취재로 탄핵 위기에 몰리자 결국 사임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래리 스피크스 대변인이 미국의 그레나다 침공 전날 ‘상식 밖’이라고 한 것이나, 지미 카터 대통령의 조디 파월 대변인이 이란 인질 구조작전 개시 이틀 전에 ‘말도 안 된다’고 한 것은 그나마 불가피한 거짓말로 봐 줄 수도 있다.

우리나라 역대 정권이 한 거짓말은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 김대중 정권은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북한에 5억 달러를 주고도 ‘단 1달러도 안 줬다’고 잡아뗐다. DJ는 국가정보원의 불법 감청에 관한 거짓말에 대해 사법부 확정 판결이 나왔음에도 사과는커녕 딴죽을 걸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남북 정상회담 추진을 숨기기 위해 많은 거짓말을 했다. 청와대 대변인은 변양균 대통령정책실장의 거짓말을 그대로 중계하는 브리핑을 했고, 대통령은 그걸 믿고 ‘언론이 소설을 쓴다’고 비난했다. 권력의 생리가 이런데도 이 정권은 언론에 정부의 브리핑이나 받아쓰라고 억지를 부린다. 그걸 취재 지원시스템 선진화라고 우기고 있다.

현 정권의 최대 문제는 언론에 대한 적대감과 불신이다. 전직 대통령비서관은 “과거 정권은 언론이 문제를 제기하면 청와대가 해당 부처에 ‘조치 후 보고하라’고 지시하기 때문에 공무원들은 언론을 의식했고 허위 보고는 엄두도 못 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의 청와대는 공무원들에게 언론 보도를 반박하고 비판하라고 부추겨 왔다.

노 대통령의 레임덕을 자초한 변양균, 정윤재 씨 비리 사건은 그런 청와대의 자업자득인 셈이다. 언론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 서둘러 성의껏 대처했다면 사태를 조기 수습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끝까지 누가 옳은지 두고 보자는 식의 오기로 일관하다 결국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차기 대통령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일이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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