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문명]돈과 코드의 문화정치판

  • 입력 2007년 9월 12일 20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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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민중미술화가인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 2기 위원장은 예술 지원 활동의 공정성에서 문제가 생길 소지를 안고 있다. 그는 임명 직전까지 친여(親與) 문화단체인 ‘문화연대’라는 막강한 문화단체를 이끌었던 현장 활동가다. 지원을 받던 단체의 장이 지원결정기관 수장으로 바로 자리바꿈을 한 것이다.

실제로 문화예술 NGO ‘예술과 시민사회’가 조사한 ‘2006년 1∼6월 예술위 기금지원 명세’를 보면 김 위원장은 자기가 속해 있던 문화연대와 부설 시민자치문화센터·문화사회연구소 등에 8건 8700만 원을 지원했다. ‘제 논에 물 대기’는 예술위 위원 거의 전부에 해당한다.

예술위는 박신의 위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미술인회의집행위원회 등에 12억2100만 원, 강준혁 위원이 이사로 있는 김수근문화재단 등에 10억9900만 원을 지원했다. 김현자 위원이 이사인 한국무용협회, 박종관 위원이 정책실장을 맡고 있는 민예총 충북지회, 정관규 위원이 부이사장인 한국음악협회, 김언호 위원이 이사장인 사단법인 헤이리 등에도 지원됐다. 소위원회 위원들이 소속된 단체까지 합치면 모두 40여억 원에 이른다. 위원들은 선정, 수혜, 평가라는 1인 3역을 하며 정부 예산을 자기들 단체 지원비로 사이좋게 나누어 가진 것이다.

이런 폐단은 민간 자율이라는 이름 아래 예술가를 행정가로 내세운 위원회의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됐다. 예술과 행정은 상상력이 엄연히 다른 직업이다. ‘밀실의 개인’ 이 속성인 예술가들에게 ‘광장의 집단’을 위한 공평무사 행정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 분야에 스페셜리스트인 예술가에게 모든 장르 심의에 ‘합의’하도록 하는 협의체 구조도 기형적이다. 다른 장르를 모르니 내가 잘 아는 사람, 조직, 장르부터 챙기는 이기주의는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이런 예술위 덕분에 예술은 안 하고 정치를 하는 문화 정치꾼들이 양산됐다. 시를 쓰고 소설을 짓고 그림을 그려야 할 예술가들이 기금 구비 서류를 얼마나 멋지게 써 내 돈을 타낼까에 골몰한다. 한 화가는 “예술적 창조에는 엄청난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가 요구된다”고 전제한 뒤 “참여정부 예술위는 가난한 예술가들을 편 가르기 했다는 점은 그렇다 치더라도 예술이 아닌 정치로 눈 돌리게 해 순수해야 할 문화판을 정치판으로 만들어 예술가들의 정신을 오염시켰다”고 지적했다.

독자, 청중, 관객이 아닌 권력에 눈 돌리는 예술가들에게서 위대한 작품을 기대할 수 없다. 러시아 작가 솔제니친도 “어떤 정부도 위대한 작가들을 사랑한 적이 없다. 오직 사소한 작가들만 사랑했다”고 했다.

참여정부 예술위의 파행은 단지 어느 시대, 어느 정부에나 있는 문화 권력의 폐해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이 정부의 ‘문화를 보는 눈’에서부터 출발한다. 문화를 권력 유지의 방편으로, 사회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보는 예술관이라는 비난을 들어도 별로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 에게만 돈과 자리를 주고 생각이 다르면 진입을 봉쇄해 버린다. 겉으로는 자율과 법을 내세우지만 교묘한 예술 통제다.

문화를 특정한 목적이나 기능에 예속시켜 정치화하는 것은 전체주의 사회나 하는 일이다. 예술가를 예술이라는 본업으로 돌려보내 줘야 한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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