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공병호]학력위조, 사회 탓해서야

  • 입력 2007년 8월 24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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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는 공급을 낳는다.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이를 공급함으로써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22일자 동아일보는 일명 ‘학위 공장(diploma mill)’의 실상을 낱낱이 전했다. 이따금 가짜 해외 학위증 이야기를 들어보긴 했지만, 이처럼 대량생산 체제가 갖춰져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일단 ‘어떻게 학력을 위조할 수 있나’라는 개탄이 앞서지만, 우리 사회의 모호한 부분을 바깥으로 드러내 정화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익 노리고 의도적 방조 가능성

유명인의 학력 위조 사실이 밝혀진 뒤 학벌을 지나치게 우대하는 한국 사회의 병폐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학력을 우대하는 현상을 비판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학력이란 한 사람이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 보이는 중요한 과정이자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학력이 좋다는 사실은 그만큼 훗날을 위해서 제대로 준비했다는 증명이 될 수 있다. 좋은 학력은 사람에게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미래를 준비할 동기를 부여해 준다.

검증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하지 않는 사회에서 그나마 한 사람의 능력을 간접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 학력이다. 앞으로 학력 이외에 능력을 검증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면 학력에 지나치게 비중을 두는 현상은 우리 사회에서도 서서히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학력은 한 사람을 변별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잣대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학력을 우대하는 한국 사회에 돌리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태의 상당 부분은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 범죄는 적극적으로 행한 경우도 있지만 알면서 방조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에 학력 위조로 문제가 된 유명인 가운데 일부는 후자에 속하기 때문에 자신은 책임이 없다고 항변하기도 한다. 물론 억울한 면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은 자기 스스로 경력을 작성하거나 점검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러므로 소극적인 방조가 올바른 일이라 말할 수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다. 좋은 학력도 타인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중요한 요건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누구나 학력이나 경력 위조의 유혹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름, 연령, 성별, 학력, 경력, 상벌기록 같은 것은 한 인간이 자신을 타인에게 공식으로 드러낼 때 가장 기본적으로 밝혀야 하는 자료다. 어떤 이유에서든 이를 속이는 일은 개인의 도덕성과 관련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투명사회로 가는 계기 삼아야

유명인 가운데는 학력을 위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돈과 명성, 영향력 등의 이익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사태에 드러난 사람들 가운데는 이렇게 적극적으로 위조를 저지른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고 본다. 학력 위조의 기대수익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는 반면, 일단 공적인 자리에 서게 된 사람들은 그로 인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번 사태는 이런 교훈을 많은 사람에게 알려줬다. 기대 수익에 비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지나치게 커지면 그만큼 관련 행위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런 긍정적인 판단의 변화가 생겨나기를 바란다.

학력을 국가나 사회가 나서서 일일이 검증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학력을 밝히는 것은 개인의 양심에 맡겨야 한다. 최근에는 공직자의 인사검증 과정이 엄격해지면서 학력 위조로 자치단체장 자리에서 물러난 사람도 나오지 않았는가. 이런저런 홍역을 치르면서 한국 사회가 더욱 투명한 사회로 나아가리라는 희망을 가져 본다.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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