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수진]피랍사태 와중에 브리핑룸 공사

  • 입력 2007년 7월 30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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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청와대에 기자실이 있어요?”

3주 전부터 청와대 ‘기사송고실’인 춘추관에 출입하면서 택시 운전사와 종종 논쟁을 한다.

주로 이런 식이다. “동십자각 끼고 돌아 죽 올라가 주세요”라고 하면 “청와대 직원이오?”라는 ‘날 선’ 목소리가 돌아온다. “기잔데요”라고 하면 “아직도 청와대에 기자실이 있어요?”라고 다시 묻는다.

27일 회사가 있는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서 택시를 탔을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목적지를 얘기하자 운전사가 빈정댔다. “이상한 ×들이네. 기자실에 대못질한다더니 청와대 기자실은 안 없앴다고?”

엄격히 말하면 춘추관엔 기자실이 없다. 기자들이 순서를 정해 대통령을 동행 취재하는 등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머물면서 일하는 사실상 ‘기자실’이지만 청와대는 ‘기사송고실’이라고 주장한다.

우리 국민 23명이 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인 탈레반에 납치된 19일부터 춘추관과 외교통상부의 기사송고실에는 각각 100여 명의 기자가 진을 치고 있다. 25일 밤 배형규 목사의 피살설이 외신에 보도됐을 때는 정부의 공식 견해를 확인하느라 26일 오전 3시 반까지 기다렸다. 29일로 피랍 11일째를 맞았지만 기자들은 정부 당국자의 설명을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화장실 가는 것조차 신경을 쓰고 있다. 하루 종일 ‘죽 치고 앉아 있는’ 기자들 사이에선 “기자들이 억류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런 와중에 국정홍보처는 27일 외교부 청사 1층에 새 브리핑룸을 만드는 공사를 강행했다. 기존 기사송고실은 2층에 있다. 27일 ‘공사 관계로 후문 출입문을 폐쇄한다’는 안내문이 붙더니 인부들이 청사 1층 로비에 있던 접견용 집기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29일 1층에 칸막이가 설치되는 등 공사는 ‘전광석화’처럼 진행되고 있다.

모든 일은 명분과 시기가 중요하다. 기사송고실 및 브리핑룸 통폐합을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이란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해 명분은 만들었다 치자. 하지만 피랍 국민 1명이 피살되고 22명의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이때 주무 부처인 외교부의 브리핑룸 공사에 나선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한 외교부 출입기자는 “외신기자들까지 피랍사태 취재 경쟁을 하는 틈을 타 기자들이 반대하는 공사를 강행한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조수진 정치부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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