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찬식]내신은 정의롭지 않다

  • 입력 2007년 6월 26일 20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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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에서 내신 반영을 높이는 데 정부가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모습이다. 교육인적자원부 서남수 차관은 그제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왜 내신 성적에 집착하고 강경수단까지 동원하는지 근본 문제에 대해 생각해 달라”고 말했다. 입시를 혼란으로 몰아넣은 내신 사태의 원인이 ‘정부의 내신 집착’에 있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소외계층 위한다는 착각 또는 기만

‘근본 문제’가 뭔지는 바로 이어졌다. 그는 “내신 성적이 높은 지방 학생이 서울 학원에서 재수를 하면 수능시험 점수 30, 40점을 높이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강남 학생들은 재수를 해도 제자리 지키기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 한마디에 정권의 시각이 드러난다. ‘내신은 정의로운 것이고 수능 점수는 돈으로 사는 것’이라는 인식이다. 강남과 지방을 대립시키는 의도도 엿보인다.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현대 사회에서 이분법으로 칼질하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다. 이런 수법을 쓰는 사람들은 대개 뭘 잘 모르거나, 혹은 대중영합주의자거나 두 부류에 속한다. 내신 역시 그렇게 간단히 ‘정의로운 평가도구’로 결론 내려서는 안 된다.

2005년 프랑스에서 고교생 16만 명이 참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발단은 내신 문제였다. 프랑스 정부는 우리의 수능시험과 비슷한 바칼로레아 과목 12개 가운데 6개를 내신 성적으로 대체해 대학입시에 반영하겠다고 했다.

시위 학생들의 주장은 이랬다. 내신 반영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계층에 불리하다는 것이다. 내신 성적은 고교 3년 동안 12번에 걸쳐 치러진 시험을 통해 산출된다. 계속 좋은 점수를 얻으려면 경제적으로 안정된 환경에서 자라는 학생이 단연 유리하다.

학생들은 한 번의 전국 시험으로 점수가 결정되는 바칼로레아가 저소득층에 덜 불리하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정부는 학생들의 뜻을 받아들였다.

우리 정부는 이와 반대로 수능은 깎아내리고 내신은 올리는 일을 벌이고 있다. 한국 현실은 어떨까. 최근 기승을 부리는 내신 과외는 수능 과외보다 훨씬 효과가 있다. 종합적 사고력을 테스트하는 수능은 과외를 받더라도 짧은 기간엔 점수가 올라가지 않는다. 하지만 암기 위주의 학교 시험은 이른바 ‘찍기’가 통한다.

학원들은 어느 고교, 어느 교사가 과거에 어떤 문제들을 출제했는지 자료집을 확보하고 있다. 학생들이 ‘족보’라고 부르는 것이다. 학원이 그에 맞춰 가르치면 내신 성적은 쉽게 올라간다. 내신 또한 경제적 여건에 좌우되기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정부가 강요하는 ‘내신 입시’로 가면 갈수록 오히려 그럴 확률이 커진다. ‘내신 반영이 소외계층을 위하는 길’이라고 외치는 현 정권보다는 프랑스 학생들의 주장이 우리 실정에도 설득력이 있다.

정부가 내신을 더 많이 반영하려는 또 다른 이유는 이른바 ‘균형발전’이다. 지방에서는 내신 성적 올리기가 쉽다고 보고 내신을 많이 반영하면 지방 학생들이 명문대에 많이 진학할 것이라는 계산이 숨어 있다. 이런 접근은 기본적으로 입시의 공정성을 해치는 데다 이 역시 ‘수도권 대(對) 지방’의 이분법으로 나눌 일이 아니다.

계층 이동 기회 더 빼앗기는 현실

2006년 입시에서 서울의 3개 구는 서울대에 각각 2명, 4명, 9명을 진학시키는 데 그쳤다. 반면에 대구 수성구는 103명의 합격생을 냈고 부산 부산진구는 56명, 대전 서구는 53명, 광주 북구는 43명이 합격했다.

대도시가 아닌 지방과 서울을 비교해도 서울이 더 못한 곳이 많다. 2002년부터 3년간 고교 졸업생 1000명당 서울대 합격자를 살펴보면 서울의 A구는 평균 3.31명, B구는 4.26명, C구는 4.53명에 그쳤다. 그러나 충북은 8.96명, 제주는 7.75명, 경남은 6.97명으로 대부분의 도 지역이 많았다.

물정 모른 채 어느 한쪽에 적대적 정책을 펴면 억울한 피해자가 더 많이 생긴다. 소외계층을 위한다며 정부가 헛발질을 해 대는 동안 그들의 계층이동의 꿈만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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