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수룡]도심 쉼터같은 추모공원을 갖고 싶다

  • 입력 2007년 6월 25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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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를 달리다 ‘빛 들고 방향 좋으니 집 짓고 살면 좋겠다’ 싶은 곳엔 어김없이 무덤이 보인다. 이런 풍광을 보고 유럽에서 활동 중인 화가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한국에서는 사람 살 곳에 무덤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삭막한 곳에 사람이 산다.”

독일 여행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숲이다. 북부에서 남부까지 햇빛이 들지 않을 정도로 빽빽이 들어서 있어 ‘검은 숲(슈바르츠발트)’이라 불린다. 숲의 나라답게 녹색 전나무로 만든 묘지는 자연을 사랑하는 독일인의 심성을 느끼게 한다. 도시 중심가에 숲을 만들고 그 숲 속에 단아하게 조성한 것이 프랑크푸르트 시립묘지다. 묘지일 뿐 아니라 시민의 휴식처요 산책로다.

1800년 파리 제20지구 초입에 조성된 페르 라세즈 묘지는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공원이다. 나무가 우거진 야산에 정원처럼 만든 묘지에는 쇼팽, 발자크, 이브 몽탕 등 유명인사가 묻혔다. 파리 시민과 관광객이 도심 속 망자의 공간을 찾아 그리운 이를 추억하며 산책하고, 일광욕을 즐긴다.

왜 한국에서 죽음은 삶과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할까. 이 거리두기 때문에 성묘도 여의치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5년 이후 연간 사망자 수는 20만 명이 넘는다. 하루 평균 600명이 묻혀야 하는데 망자를 위한 공간은 필요하고 국토는 좁다. 대안은 추모공원인데 ‘내 주변은 안 된다’는 님비 현상이 극심하다. 어느 지자체는 최근 발효된 주민소환제의 적용 사례로 화장장을 유치한 지역 단체장을 거론한다니 씁쓸하다. 지상의 모든 것은 유한하다. 영원할 것 같은 모든 것은 곧 지나간다. 우리 모두의 갈 길은 결국 공평한 한 곳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가 거부하고 꺼리는 이런 공간을, 예술이 함께하는 생태추모공원으로 조성한다면 산 자와 죽은 자의 간격을 좁힐 수 있지 않을까.

지하철이 닿는 도심 재개발구역에도 나무를 심어 울창한 숲을 만들고 그 속에 예술품 같은 추모 공원을 만든다면 죽은 자의 공간도 무섭지 않을 것이다. 이런 풍광은 도심에도 어울릴 것이다.

체육계의 반대로 지연된 서울 동대문운동장 재개발 지역에 인공 산을 만들면 어떨까? 미술관과 생태공원이 있어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고 사시사철 계절의 특성을 담은 꽃이 있는 문화공간이 생긴다면? 동물들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뛰노는 숲 옆에 단아한 추모공원이 만들어진다면 또 하나 서울의 명물이 되지 않겠는가? 크고 작은 건물 속에 묻혀 자동차 매연에 시달리던 동대문도 서울 외곽 산성과 더불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풍광이 완성되는 날, 꽃과 나무가 어우러진 공간에서 산책하며 낭만을 즐길 수 있는 추모공원을 우리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꿈꾸는 서울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박수룡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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