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칼럼]反美하면 反中하고, 親中하면 親美하라

  • 입력 2007년 5월 25일 19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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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말이다. 우리 화물선 골든로즈호를 들이받아 선원 16명을 실종케 한 선박이 중국 배가 아니라 미국 배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모르긴 몰라도 반미(反美)시위깨나 벌어졌을 것이다. 진상 규명과 희생자 추모를 위한 모임이 결성돼 서울 도심을 성난 구호와 깃발로 가득 메웠을 것이다. 5년 전 이맘때 효순 미선 양 추모 촛불집회를 떠올려 보라.

이상하지 않은가. 그때보다 더한 끔찍한 사고이고, 명백한 해상(海上) 뺑소니인데도 중국에 대한 항의성명 한 줄 볼 수 없으니 말이다. 그 많던 애국 인권 시민단체들은 다 어디 갔기에 희생자 가족들만 사고대책본부가 설치된 중국 옌타이(煙臺)에서 외롭게 농성 중일까. 침몰한 골든로즈호에선 지금까지 4구의 시신이 인양됐다.

중국 선박의 책임이지 중국 정부의 책임은 아니지 않으냐고? 그렇지 않다. 문제의 중국 선박이 국제법상 해난구조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으므로 중국 정부도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봐야 한다(김찬규 경희대 명예교수·국제법). 더욱이 중국은 외교 관례를 무시하고 사고 신고 접수 후 13시간이 지나서야 알려 왔고, 우리 측의 공동수색 요청도 한때 거부했다.

어느 모로 보나 반중(反中) 감정이 출렁일 만도 한데 조용하다. 이유가 뭘까. 한 남북문제 전문가는 “그들의 교과서에 반미 자주화투쟁은 있어도 반중 자주화투쟁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은 반미운동의 민족적 대의(大義)를 말하지만, 결국 어떤 지침이 있으니까 조직이 있고, 조직이 있으니까 반미의 불을 지필 수 있고, 중국은 그렇지 못할 뿐이라는 얘기였다. 공감할 만했다. ‘조직’이 ‘운동’을 낳는다고나 할까.

중국의 海上뺑소니에 침묵

반미운동의 기저에는 한미 간에 얽히고설킨 인연과 감정이 복합적으로 깔려 있다. 분단과정에서의 미국의 역할에 대한 논란과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미국의 방관 의혹도 그중 하나다. 압축성장 과정에서 배태(胚胎)된 모든 부조리의 근원을 미국에서 찾는 극단적 시각도 있다. 이런 것들이 쌓여서 전선(戰線) 형태로 굳어져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오늘의 반미운동을 보면, 사안별 적합성 유무(有無)보다는 그저 반미조직이 있어서, 정확히 말하면 그런 조직을 유지해야 할 몇 가지 교조적 필요성 때문에 운동을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때가 많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했던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한-EU(유럽연합) FTA 협상에는 침묵하는 이유도 설명할 길이 없다. 협상이 잘못될 경우 지게 될 부담이 한미 FTA에 못지않은데도 말이다.

직업적인 ‘반미꾼’이 아니라면, 이런 자기모순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이성(理性)이 살아 있는 시민단체라면 스스로를 시대착오적이고 편향적인 반동(反動)의 깃대에 계속 묶어 두지는 않을 것이다. 한미 FTA 비준만 해도 그렇다. 비준 반대에 성공한다면 그것은 노무현의 패배이기에 앞서 반미 자주화 투쟁의 승리가 될 것이다. 정녕 그 대열에 서고 싶은가.

한반도와 주변 질서에 구조적 변화의 기운이 갈수록 강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북핵의 고리가 풀리면 안보 지형도 크게 바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반미’하려면 ‘반중’하고, ‘친중(親中)’하려면 ‘친미(親美)’해야 한다. 그것이 4강의 파고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대한민국의 생존전략이다.

누구나 한국경제의 샌드위치 신세를 걱정한다. 그러나 더 두려운 것은 안보의 샌드위치다. 4강에 갇혀 영원히 타박이나 받고 살아야 한다면 끔찍한 일이다. 이 정권이 한때 자랑스럽게 내세웠던 ‘동북아 균형자론’ 대신 ‘샌드위치론’을 되씹어야 할 처지가 됐지만 어쨌든 이런 상황은 막아야 한다. 그러려면 국민 모두가 주변 4강에 대한 균형 잡힌 인식부터 가져야 한다. 극단적인 반미도, 중국에 대한 막연한 기대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민단체, 외교의 균형추 돼야

시민단체가 나설 때가 지금이다. 흔히 외교를 ‘엘리트 외교’와 ‘대중 외교(mass diplomacy)’로 나누지만 어느 경우나 외교란 국민적 합의(consensus)의 기반 위에서 이뤄진다. 시민단체가 해야 할 역할이 여기에 있다. 국가생존에 필요한 균형 잡힌 대외인식(對外認識)의 확산을 선도함으로써 불필요한 국내갈등(남남갈등)을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골든로즈호 참사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이다.

이재호 논설실장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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